북한이 지난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한 가운데, 과거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진행자였던 이지연씨가 지난 2000년 6·25 전쟁 때 헤어진 오빠와 극적으로 상봉했던 사연이 공개됐다.
이씨는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진행자로서 138일간 여정을 함께했지만 정작 그는 북에 사는 오빠를 만나지 못해 가슴앓이를 했다.
이씨의 오빠는 고등학생이었던 1950년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가 가족들과 헤어졌고, 생사도 모른 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씨는 그간 방송에서 다른 가족의 상봉 현장을 지켜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15년 만에 재개됐다. 이 현장에서 이씨는 50여 년 전 헤어진 오빠 리래성씨를 만나게 됐다.
이씨는 지난달 30일 방송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을 통해 상봉 당시 상황을 자세히 떠올렸다.
그는 “오빠가 18세에 끌려가서 소식이 없다가 68세에 나타났다”며 “상봉장에서 오빠가 들어오는데 아버지가 걸어 들어오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68세에 돌아가셨다. 68세의 오빠가 걸어오는데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겠더라”고 말했다.
이씨 가족의 상봉은 극적이었다. 한국에 남아 있던 이씨 가족도, 북에서 온 이씨의 오빠도 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씨는 “2000년 7월 17일이 당시 제헌절 휴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언니한테 전화가 와서 TV를 켜보라고 하더라. 오빠가 우리를 찾고 있다는 자막이 나온다는 거다”라며 “바로 방송국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오빠를 만난 이씨는 제일 먼저 “직접 신청했느냐”부터 물었고, 이씨의 오빠는 “며칠 전 갑자기 보위부에서 보따리를 싸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신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연을 들은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민 이철은은 북한 당국의 계획하에 이씨 가족의 상봉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북한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지연 아나운서에 대해 알았을 것”이라며 체제 선전을 위해 이씨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특히 그는 “리래성씨가 북한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며 “북한에 있을 때 이분 나오는 영화를 자주 봤다. 북한에서 말하는 인민 배우, 즉 탑 배우”라고 했다.
악역으로 유명하다는 리씨는 북한 공훈 배우라는 칭호도 얻었다고 한다. 상봉 당시에도 리씨는 “통일된 다음에 경복궁에 가서 (영화를) 찍으면 좋지 않을까”라며 “그날을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빠가 평양예술대학 교수도 하셨다더라. 1호 귀순 배우 김혜영씨가 우리 가족의 상봉 장면을 보더니 ‘교수님 왜 저기 계시냐’고 한 적이 있다더라. 오빠의 제자였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어느 날 김정일이 오빠에게 ‘연기 한번 해보라’고 말해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며 “상봉 당일 조선중앙TV 기자가 우리 가족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취재했다. 그래서 오빠는 자유롭게 대화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한 당국은 ‘상봉장에서 음식도 함부로 먹지 말라’는 내용의 사전 교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가족 상봉단이 강남의 유명 갈빗집에서 환영 식사를 했는데 갈비를 안 먹더라”며 “교육 내용을 모르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북한에서 고기를 많이 못 먹었나 생각했다. 그래서 오빠 어깨를 만져봤는데 앙상하게 말랐더라”고 했다.
걱정하는 이씨에게 오빠는 “따뜻한 물 나오는 아파트에서 산다.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지금도 매일 샤워할 때마다 오빠의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며 “고기를 못 드시고 뼈가 앙상했다”고 곱씹었다. 이에 이철은은 “북한에선 배우들의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월 남북협력기금 약 550억원이 투입된 금강산 내 이산가족면회소 철거에 들어갔다. 이에 통일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북한이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하고 있음을 밝히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산가족 면회소는 2003년 11월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합의에 따라 2005년 8월 31일 착공해 지하 1층, 지상 12층 규모로 2008년 7월 완공됐다. 2009년 9월 이산가족 단체 상봉 행사를 개최한 뒤 2018년 8월까지 총 5차례 사용됐다.
이산가족면회소 철거는 북한 김정은이 2019년 10월 금강산 지구를 찾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됐다. 북한은 현대아산 소유의 해금강호텔과 금강산 문화회관, 온정각 동관과 서관, 구룡빌리지 등을 철거 또는 해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