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속보가 전해지자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110m 떨어진 곳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한 1만6000여 명(경찰 비공식 추산)은 “이게 정말 사실이냐”며 탄식했다. 지지자 상당수는 태극기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선고 직후 “헌재로 쳐들어가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리치며 반발하는 지지자가 많았지만, 실제 헌재로 행진하거나 경찰과 충돌해 부상자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개신교계 단체 세이브코리아와 전국 순회 집회를 돌면서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온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판결 직후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고 했다. 관저 인근에서 만난 심모(70)씨는 “밤을 새워서라도 자리를 지킬 각오로 왔는데 ‘만장일치’ 판결에 맥이 빠졌다”며 “‘집에 가자’며 돌아가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이 되자 관저와 헌재 인근에 모였던 수만 시위대 대부분이 돌아갔다. 저녁부터는 도심 내 차량 통행도 급격히 줄면서 평소 금요일보다 통행이 원활했다.
앞서 이날 관저 근처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엔 자유통일당 주최로 오전 8시쯤부터 시민 수천 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돌아와요 윤석열’ ‘탄핵 기각’ 같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을 외쳤다. 집회 연단에 오른 한 발언자가 “헌재 선고 직후 우리 대통령께서 돌아오신다”고 하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헌재 TV 생중계 영상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시민은 ‘탄핵 무효’라는 손팻말을 내동댕이치면서 “이럴 수가 있느냐” “우리 대통령님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한 남성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가자”고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 28분쯤엔 헬멧과 방독면 등을 쓴 한 남성이 헌재 인근 안국역 5번 출구 앞에 세워진 경찰 버스 유리창을 곤봉으로 내리쳐 깼다가 체포됐다. 그러나 사망자 4명과 부상자 63명(경찰 부상자 33명)이 나온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달리 이날 찬탄·반탄 시위대 간 혹은 시위대와 경찰 간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이날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당장 뒤집어엎자”며 욕설을 퍼붓자 무대에 오른 진행자는 “폭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흥분을 가라앉히시라. 폭력은 안 된다”고 말리기도 했다.
반면 관저 앞 탄핵 찬성 집회에서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춤을 추거나 장구와 꽹과리를 두드리며 환호하는 지지자도 있었다. 광화문과 헌재 인근도 축제 분위기였다. 약 1만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부부젤라(나팔 모양 응원 도구)를 불면서 “우리가 이겼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황보현(22)씨는 “(집회 현장) 맨 앞줄에서 헌재 생중계를 봤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떨렸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과 보수 단체들의 잇따른 판결 승복으로 주말 집회 규모는 급속히 줄어드는 모양새다. 세이브코리아는 이날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오늘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며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세이브코리아는 5일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2만명 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선고 직후 취소했다. 대통령 국민변호인단도 이날 오후 집회를 조기 종료했다. 전한길씨도 선고 이후 유튜브 채널 실시간 방송에서 “헌재의 선고 결과에 대해 승복한다”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전광훈 목사가 주축인 자유통일당은 5일 오후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0만명 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서울 등 전국에 경찰력을 100% 동원하는 ‘갑호비상’을 발동했던 경찰은 이날 오후 6시부터 가용 경찰력 50% 이내 동원이 가능한 ‘을호비상’으로 단계를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