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6월 회비 4400원 정말 잘 받았읍니다. 머나먼 스웨덴 나라에서 보내주신 회비를 가지고 저의 학비와 교복을 샀읍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양친(養親)님 자랑도 합니다. …(중략)… 양친님. 우리 한국은 지금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다음 편지 낼 때까지 안녕하기를 빌면서 이만 씁니다.”(1969년 6월 30일)
영미권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작년 8월 이 같은 내용이 적힌 편지가 올라왔다. 사용자들은 영어를 쓰는데 편지 내용은 한글이었다. 이 편지 글쓴이는 “스웨덴 북부에 사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편지가 발견됐다. 번역을 도와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55년간 고이 간직했던 이 편지는 누렇게 색이 바랬지만, 찢어지거나 얼룩진 부분은 없었다. 이 글엔 4000건이 넘는 추천이 달렸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한 문장씩 영어로 번역해 200개가 넘는 댓글을 올렸다. 이들은 “할머니가 정말 훌륭한 분이다” “가슴이 뭉클하다. 다른 편지도 읽고 싶다”고 했다.
편지 발신자는 부산의 한 퇴직 교사 공삼현(66)씨다. 국민학교 2학년인 지난 1967년부터 5년간 스웨덴의 한 부부에게 후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약 7500㎞ 떨어진 북유럽 스웨덴의 한 부부가 크레파스, 스케치북, 동화책 등을 보낸 날이면 공씨는 친구들에게 “양친이 보내준 귀한 선물”이라며 온 동네를 돌며 자랑했다.
먼 나라 스웨덴 부부는 공씨에게 매달 교육비로 3000~4000원을 지원했다. 편지에 언급된 ‘4400원’을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13만원 정도다. 매달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돈을 받을 때마다 공씨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스웨덴으로 보냈다. 그런 편지가 30통이 넘는다. 공씨는 부부가 보내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도, 그 그림을 들고 찍은 사진도 보냈다.
‘스웨덴 부부’는 공씨가 다니던 학교에 세계 동화 전집도 보내줬다. 이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이 새로 생긴 ‘학급문고’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린 공씨와 스웨덴 부부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건 6·25전쟁 이후 설립된 한 자선 병원이 후원자를 연결해 준 덕분이었다. 미국·영국 등에서 전후(戰後) 복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아픈 아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줬고 부활절·성탄절엔 선물을 나눠줬다. 공씨는 “코쟁이 의사, 간호사들이 매일같이 나를 반겨줬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1959년 태어난 공씨는 그해 가을 사라호 태풍으로 집을 잃었다. 이 때문에 유년 시절 내내 정부가 마련해 준 임시 거처에서 살았다. 국민학생 시절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허다했다고 한다. 공씨는 “자선 병원에 가면 쌀밥에 소고기국을 공짜로 준다고 하니 늘 그곳을 찾아갔다”며 “그곳에서 스웨덴의 ‘양친’과 연결해 줬다”고 했다.
공씨가 스웨덴 양친과 소식이 끊긴 것은 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성년이 돼서는 ‘스웨덴 부모’ 이름마저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달 초 한국 소셜미디어에서 공씨의 편지가 외국 사이트에서 화제가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본지가 지난 8일 공씨에게 전화해 ‘이 편지가 기억나시느냐’고 했다. 그는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돌아가셨습니꺼”라고 했다.
56년 전 ‘스웨덴 양친’에게 썼던 편지를 통화에서 읽었더니 공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얍니꺼. 학교에서 경시대회에 나갔던 것도, 친구들과 눈썰매를 탔던 일도 다 감사 편지에 담았었는데 부끄럽게도 50년 넘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때 받은 양친의 사진마저 잃어버렸네예….”
공씨는 스웨덴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전교에서 1등을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는 실업계 학교인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부산대 사범대학에 합격해 부산에서 35년간 교사로 일했다. 지난 2022년 중학교 교감으로 퇴직할 때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은퇴한 뒤 지금은 부산의 한 교회에서 장로로 있다.
공씨는 “만나 뵐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스웨덴으로 기꺼이 달려가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이젠 만날 수가 없다”며 “먼 나라 양친에게 받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주위에 더 베풀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분들께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이래 쓸랍니다. 저를 이만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그분들의 아들, 딸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