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2025 K-Tea 국제차문화산업박람회'에서 한 관람객이 차를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향이 정말 좋네요. 차(茶)만큼 차분해지는 게 없어요.”

지난달 23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열린 차·공예 박람회를 찾았더니 관람객 수백 명 중 20~3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은 60여 부스 곳곳에서 차를 시음하고 다기를 구경했다. 친구와 행사장을 찾은 직장인 박정은(28)씨는 “다도(茶道)를 즐기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피로도 풀린다”며 “세상이 흉흉한데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차 만한 게 없다”고 했다.

중장년층만의 취미로 여겨졌던 다도 문화가 M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2030을 독촉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이 이들의 눈과 귀를 시종일관 어지럽히는 현대 사회에서 차는 일종의 ‘대피소’다. 하루 30분~1시간 시간을 내 차를 우리고 천천히 음미하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주일에 3~4번 퇴근한 뒤 차를 즐긴다는 직장인 김소영(26)씨는 “아무 생각 없이 찻잔을 데우는 시간만큼은 걱정이 없다”고 했다.

티 소믈리에(Tea Sommelier·차 전문가) 자격증과 티블렌딩 전문가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 따르면 2030 세대의 해당 자격증 취득 건수는 지난 2020년 424건에서 작년 986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초·중급 단계인 2급 자격증을 받기 위해선 백차·녹차·우롱차·홍차·보이차·허브차·과일허브차 등 60~70여 종류의 차를 시음하고 향과 맛을 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작년 6월 2급 자격증을 딴 직장인 김모(34)씨는 “시간을 들여 우려낸 차를 음미하면서 여유를 만끽하는 게 다도의 매력”이라고 했다.

차를 시음하는 행사에 MZ들이 잇따라 몰리면서 ‘티(차)와 티케팅(Ticketing)이 합쳐진 ‘티(tea)켓팅’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다도 체험 행사는 대부분 온라인 예매를 통해 가능한데, 경쟁이 치열해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마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복궁에서 궁중 약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경복궁 생과방’ 온라인 신청엔 매번 수만 명 이상 몰린다. 생과방은 조선 시대 임금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가유산진흥원은 당첨권을 웃돈 받고 파는 암표(暗票) 거래까지 기승을 부리자 작년 하반기부터는 신청을 따로 받은 뒤 당첨된 사람들에게 따로 공지하는 ‘추첨제’로 바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사회 초년생들, 특히 MZ세대가 상처를 더 많이 받아 ‘치유’를 갈망하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으로 조용하게 즐길 수 있는 다도가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