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회는 16일 탁월한 성과를 낸 교수들이 65세 정년 이후에도 학교에서 계속해서 연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대 70세까지 재임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한국에선 최근까지 반도체와 나노 등 첨단 과학 및 경제·인문·사회 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낸 ‘간판급’ 석학들이라도 정년이 되면 예외 없이 은퇴해왔다. 그러나 선진국 톱 교수들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뒤지지 않는 교수들이 ‘60대’가 되면 사실상 연구를 접는 건 한국의 학문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란 비판이 잇달아 제기됐다. 위기감을 느낀 서울대 교수회는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우수 교수들이 연구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서울대가 사실상 ‘교수 정년 연장’ 방안을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이진영

본지는 서울대 전체 교수들의 자치 단체인 교수회가 최근 학교 본부에 제출한 ‘우수 정년 교수 재임용 방안에 대한 연구안’을 입수했다. 이 안(案)에 따르면 교수회는 서울대 내 우수 교수들 중 탁월한 성과를 낸 교수들을 ‘연구 우수 교수’(연구 트랙·track), 교육 우수 교수, 교육·연구 우수 교수 및 사회 공헌 우수 교수 등 4개 분야로 나눠 최대 5년까지 재임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문적 업적을 쌓거나, 학생 지도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인 교수, 혹은 산학(産學) 협력 외부 활동에서 성과를 낸 교수들을 분야별로 구분해 재임용 여부를 판단한 뒤 ‘임기 연장 교수’들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 트랙’ 교수들의 경우 서울대는 강의당 수업료, 4대 보험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교수 1인당 연간 약 3200만원으로 현직 정교수 평균 급여(약 1억2000만원)의 27% 정도의 비용을 지급한다. 연구 전담 교수들은 별도로 월급은 지원하지 않고 연구 활동 지원비 약 400만원을 지급하게 된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들인 만큼 연구 장소 등만 학교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교수들이 따낸 외부 연구비로 충당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수회는 연구 활동에 필수인 대학원생들도 계속해서 지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교수회는 정년 5년 전인 만 60세가 되는 해 재임용 대상 교수들을 1차 선정한 뒤, 정년 1년 전인 64세 때 여전히 연구·교육 성과가 나오는지를 다시 한번 따져 최종 임용을 확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재임용이 최종 확정되더라도 65세 정년 후 최초 3년간만 연구·교육 활동이 보장된다. 이후엔 성과를 다시 따져 2년간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인 이른바 ‘3+2년’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교수회는 학교 측에 제안했다. 교수회 관계자는 “개별 교수들의 연구 지속 가능성을 철저히 따지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교수회는 다만 재임용 교수 비율은 퇴임 교수의 30%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서울대 내 신규 교수 채용을 저해하지 않기 위한 차원이다. 임호준 서울대 교수회 부회장은 “정말 뛰어난 교수들에 한해 연구와 교육 등을 더 할 수 있게 제도화하는 것은 서울대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수회가 퇴임 직전인 교수들의 재임용 방안을 내놓은 건 정년 문제로 인한 서울대의 ‘인재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비(非)서구권 학자로는 최초로 ‘슘페터상’을 받은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가 중앙대로 옮겼다. 나노 물리학 대가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던 임지순 울산대 반도체학과 석좌교수도 지난 2016년 서울대에서 포스텍으로 이적했다.

본지 취재 결과 국제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낸 교수들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석좌 교수’ 제도로 뽑힌 서울대 교수 13명 중 절반 이상인 7명 임기가 불과 2년도 남지 않았다. 이들 상당수는 이미 다른 대학이나 연구 기관들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고등교육법상 교수의 정년은 65세로 고정돼 있다. 그러나 포스텍,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에선 우수 교수에 대해선 정년 이후에도 연구를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인 서울대는 예산 부족과 의사 결정 구조 문제 때문에 이 같은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대 유홍림 총장 직속 자문기구 제도혁신위원회도 지난달 초부터 우수 교수 재임용 방안 등을 연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수회 안 등을 면밀히 검토해 우수 교수 재임용 방안 시행 시기와 세부 내용 등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