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이 죄인 취급받는 현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군인들이 명예와 존엄을 지켜가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바꾸겠습니다.”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모인 예비역 영관급 지휘관 4명은 이렇게 외쳤다.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57) 예비역 해군 대령, 3군 사관학교 최초 여생도인 박경애(47) 예비역 공군 소령, 이기성(55) 예비역 육군 중령, 정창욱(54) 예비역 공군 소령 등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30대 이한샘(39)씨다. 군인들이 전(前) 정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과도하게 수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며 물류 회사를 그만뒀다. 몇 년 전부터 ‘군 본연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단체를 만들겠다며 최근까지 함께할 사람들을 수소문해왔다.
이들 5명은 군인과 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민간 단체 ‘군보호연대’를 27일 창립한다. 안보의 최전선에서 국민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군 조직이 정권과 이념에 따라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이한샘 대표는 “여성이라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의 군 비하가 지나치다”며 “정치권의 왜곡·정치 여론몰이로부터 군 조직을 보호하고, 군인들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하겠다”고 했다. 이어 “목숨 바쳐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국군(國軍)이 특정 진영에 줄 서는 모습도 사라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군보호연대 출범은 최근 몇 년간 군의 기강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최원일 전 대령은 “천안함 사건 당시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내 자녀들이 ‘경계 실패한 패잔병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도 가지 못했다”며 “(계엄 이후로도) 군 가족들이 각종 비방을 들으면서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이기성 전 중령은 최근 한 군인 아내로부터 “남편이 (계엄에 참여했던) 특전사 부대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학교에서 ‘내란 공범’ ‘반란군’ 소리를 들었다며 눈물을 보였는데 가슴이 찢어졌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군과 관련된 시민 단체들에 대해 “정치 편향 문제가 심각하다”며 “군을 공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 군을 위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이 전 중령은 지난 2009년 설립된 군인권센터를 언급하고 “정확한 사실 확인을 건너뛰고 군을 매도하는 풍조를 만들고 있다”며 “그 결과 군에 대한 국민 여론이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고 있다”고 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018년 7월 국군기무사령부(현재 방첩사령부)가 작성했다는 ‘계엄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이는 기무사 해편(解編)의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이 문건을 근거로 박근혜 정권이 계획한 ‘친위 쿠데타’ 음모로 몰아갔지만, 군·검 합동 수사단이 그해 11월까지 104일간 2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해서 전원 무혐의로 종결됐다.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2018년 12월 극단적 선택을 했고, 현역 신분으로 기소된 기무 요원 상당수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정 전 소령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하게 군을 공격하는 풍토는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최 전 대령은 “민주당 등에서 계엄 당시 ‘1만명 학살 계획’ 등의 확인되지 않은 발언이 나왔을 때도 군인권센터는 ‘침묵’했다”며 “천안함 정부 조작설, 미군 오폭설, 좌초설, 피로 파괴설 등등 물증도 없는 황당한 음모론 때도 방관했다”고 했다.
이들은 군인들이 소송에 휘말릴 경우 법률 조언을 해주고, 군 구성원이나 조직이 억울하게 논란에 설 경우 언론 대응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 전 소령은 “사건의 정확한 원인 파악보다 감정적 여론과 비난이 우선되는 분위기에서는 군인들이 소신껏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명백하게 정치적 어려움에 휘말린 군인들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무실은 서울 송파구에 마련됐다. 단체 운영은 100% 후원금을 통해 이뤄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