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작년 1월 도입한 ‘기후동행카드’는 한 달에 6만2000원을 내면 서울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다. 지금까지 192만장 발급됐고 하루 평균 약 64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서울시민 5명 중 1명이 기후동행카드를 발급받은 셈이다. 작년 말 서울시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의 서울시 정책’ 투표에서 1위로 뽑혔다.
그러나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서울시의 시름은 깊어진다. 문제는 돈이다. 작년 한 해에만 1741억원에 달하는 손실금이 쌓였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 종로구 한 해 예산의 3분의 1에 맞먹는 돈이다.
수도권은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이지만 서울뿐 아니라 경기, 인천 등이 경쟁적으로 각자 ‘교통카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기후동행카드 손실 보전 등에 예산 1086억원을 쓴다. 경기도와 인천도 121억원과 26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도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단위 교통카드인 ‘K패스’를 운영하는 데 2374억원을 들인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 간 포퓰리즘 경쟁에 여러 교통카드가 난립한 상황”이라며 “교통카드를 통합해 비효율을 줄이고 시민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 코레일은 오는 6월 수도권 전철 요금을 150원 인상할 계획이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서울시는 2023년 독일의 ‘9유로 티켓’을 본떠 기후동행카드 사업을 시작했다. 9유로를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탈 수 있는 제도다. 현재는 가격이 58유로로 오르고 이름도 ‘독일 티켓’이 됐다.
서울시의 당초 구상은 기후동행카드를 경기, 인천 등으로 확대해 ‘수도권 교통 패스’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토부, 경기, 인천은 서울이 주도하는 기후동행카드 사업에 동참하지 않고 각자 패스를 내놓았다.
국토부는 작년 5월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요금의 20~53%를 돌려주는 ‘K패스’를 출시했다. 한도는 60회까지다. 국토부는 “기후동행카드는 서울시 사업이고, 우리는 K패스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교통카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서울시가 2023년 9월 사업 구상을 발표하자 경기도는 “2600만 수도권 교통 문제를 서울시가 일방 추진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이후 서울시와 경기도는 수차례 실무 협의를 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작년 2월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경기도가 기후동행카드 사업을 도와주지 않고 있다”고 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오 시장이 경기도 탓을 하는 건) 정치적 행태”라고 반박했다. 결국 작년 5월 경기도는 자체 교통카드인 ‘더 경기패스’를 내놨다. K패스를 기초로 경기도민에게는 60회 환급 한도를 없애고 청년 할인 대상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김포, 과천, 고양, 남양주, 구리 등 경기 지역 도시들과 개별적으로 협약을 체결하며 기후동행카드 적용 지역을 넓혀왔다. 예를 들어, 김포시민이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도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있게 됐다. 해당 지자체들은 비용 일부를 분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협약을 체결한 지자체는 전부 지자체장이 오 시장과 같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시장이 민주당 소속인 지자체들은 서울시와의 협약에 소극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천, 안양 등에서 ‘우리도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민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교통 복지 정책을 정치 논리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인천시도 I패스를 내놨다. 이름은 다르지만 경기패스와 거의 똑같은 방식이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교통카드 전쟁’을 벌이는 사이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울시는 올해 기후동행카드 이용자가 더 늘어나 총 손실금 규모가 186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에 여러 차례 국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국토부의 K패스 예산은 지난해 1011억원에서 올해 2374억원으로 2.3배가 됐다. 각 지자체가 분담하는 비용을 제외한 국비만 그 정도다. 경기패스엔 121억원, I패스엔 26억원이 각각 투입된다. 인천의 경우 올해 석 달 만에 전체 예산의 37%를 써 추가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하반기에 추경을 해서 예산을 더 태울 계획”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경쟁적으로 세금을 쏟아붓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이제 도입한 지 1년이 넘은 만큼 성과를 비교·분석해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당장은 편리해 보이지만 결국 손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며 “‘수도권 통합 패스’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