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최근 캐나다에서는 반미(反美) 정서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우방국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길 바란다”고 발언했기 때문이에요. 캐나다 국민들은 미국 여행을 취소하고, 미국산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섰습니다. 심지어는 이름조차 부르기 싫다는 이유로 ‘아메리카노’를 ‘캐나디아노’로 바꿔 부르는 사람들도 늘고 있대요.

지난 9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어요. 팻말에 적힌 '팔꿈치를 들어라(ELBOWS UP)'라는 말은 원래 아이스하키에서 팔꿈치를 들어 올려 상대에게 맞서는 행동을 뜻하는데, 최근 캐나다에서 '미국에 저항하라'는 구호로 쓰이고 있어요. /AP 연합뉴스

미국과 캐나다는 지금까지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많은 교류를 해 온 나라인데요. 두 국가는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미국과 캐나다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식민지였던 두 나라

캐나다와 미국은 모두 유럽계 정착민들에 의해 형성된 국가예요. 15세기에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후, 유럽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죠. 두 국가가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선 16세기부터 본격적인 탐험과 식민지 건설이 시작됩니다.

당시 유럽 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캐나다 지역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는데요. 프랑스는 17세기부터 캐나다 동부에 있는 퀘벡 지역 등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영국도 뉴펀들랜드 등에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2018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당시 캐나다 총리가 앉아 있는 모습. 트럼프는 두 번째 당선 이후 트뤼도에게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은 어떤가"라며 노골적으로 조롱했습니다. /AFP 연합뉴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식민지 경쟁은 전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의 세력 다툼까지 얽히며 1756년 유럽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7년 동안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요. 이 전쟁이 영국과 프로이센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영국은 캐나다 지역을 포함해 북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를 차지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영국은 캐나다 지역의 프랑스계 주민들이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고 프랑스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어요. 이미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중에 또 다른 저항 세력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美, 과거에도 영토 확장 야욕 있었죠

미국은 독립(1783년) 이후 캐나다와 본격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출발은 좋지 못했어요. 신생 독립국 미국은 호시탐탐 캐나다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키려고 했거든요.

1814년 미국과 영국이 전쟁 종식을 위해 조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이후 몇몇 조약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확정됐어요. /위키피디아

미국은 독립 이후 영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차례 외교적 마찰을 빚는데요. 이 갈등이 1812년 발발한 미·영 전쟁으로 분출됩니다. 당시 미국은 영국령 캐나다를 공격해 영토를 빼앗으려고 했어요. 전쟁은 미국과 영국이 종전 이전으로 모든 상태를 되돌릴 것으로 합의하면서 종결됐지만, 이후 양국은 국경 문제를 두고 몇 차례 분쟁을 벌입니다. 19세기에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이 확정된 이후에도 알래스카주의 경계 문제 등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죠.

그럼에도 캐나다 지역과 미국의 관계는 미·영 전쟁 이후 다시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어요. 19세기엔 캐나다 서부에서도 금을 찾으려는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어나 많은 미국인이 캐나다로 건너오기 시작하지요.

1867년 캐나다가 자치권을 부여받은 후엔 경제뿐 아니라 인적 교류도 늘어났어요. 19세기 후반엔 미국의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며 당시 캐나다 인구의 약 6분의 1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해요. 반대로 미국 기업들은 캐나다 시장으로 진출했고, 긴밀한 관계로 발전한 양국은 점점 동질화되어 갔죠.

세계대전 거치며 최우방국으로

두 나라는 20세기 발생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같은 편에 치르며 최우방국으로 거듭납니다. 영국 자치령이었던 캐나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점차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31년 영국 의회에서 발표된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완전한 자치권을 갖게 되지요. 2차 대전(1939~1945년) 때 캐나다는 독립적으로 전쟁 참여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픽=양진경

2차 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이끄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냉전에 돌입했지요.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1949년 북아메리카와 유럽 국가들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설립을 주도하는데요. 캐나다는 나토의 창립 멤버로, 미국 중심의 안보 정책에 발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나토에 참여하면서도 미국이 벌이는 전쟁엔 최대한 연루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어요.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은 캐나다에 보다 적극적인 군사 협조를 요구했어요. 그러나 당시 캐나다 총리 피에르 트뤼도는 베트남 참전에 반대하고, 당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던 쿠바와의 관계 회복을 추진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지요.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야 군사 협조 문제로 인한 양국의 갈등이 줄어들게 됩니다.

1990년대 이르러 캐나다와 미국은 일종의 경제 동맹을 맺어요. 1994년엔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 3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합니다. 3국 사이 각종 관세와 규제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는 내용이었죠. 이 협정 이후 캐나다와 미국의 경제 협력이 크게 늘어나며 양국은 경제적으로 더욱 밀착하지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인 2018년 이 협정 때문에 ‘미국이 큰 손해를 보게 됐다’면서 협정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하기에 이릅니다. 한술 더 떠서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나섰지요. 최근 트럼프가 캐나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으면서 100년 이상 협력 관계였던 양국 관계도 얼어붙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이러한 급격한 관계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