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김명남 옮김|출판사 열린책들|가격 1만7000원

‘불주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를 비롯해 과거 많은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주사였는데요. 우리나라가 넉넉하지 않은 시절엔 알코올램프로 바늘을 달궈 소독을 해가며 주사 하나로 돌려가며 백신 접종을 했어요. 그 주사를 맞고 흉터가 생긴 형, 누나들을 보며 제 차례가 오지 않길 바란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도 사그라들지 않는 백신에 대한 논란을 보면 문득 그때의 공포가 떠올라요.

‘면역에 관하여’는 백신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백신을 둘러싼 논쟁이 폭발하기 전인 2014년에 쓰였어요. 그럼에도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백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자는 “백신으로 인한 심한 부작용은 드물지만, 정확히 얼마나 드문지는 계량하기 어렵다”라며 백신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요.

이 두려움의 뿌리에는 백신에 대한 무지함이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수은 화합물은 2002년에 이미 아동 백신에서 제거됐지만, 10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의 머릿속엔 아직 백신에 수은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 남아 있어요.

백신이 꺼림칙한 또 다른 이유는 병원체를 직접 몸에 투여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나쁜 것이 몸에 들어온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죠. 저자의 설명은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처방전과도 같습니다. 그는 사람이 병균에 노출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면역 체계에 장애가 생긴다고 설명하지요. 저자에 따르면 이미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경로로 백신보다 더한 정도의 유해 물질을 섭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모유’ 또한 슈퍼마켓에서 팔린다면 식품 안전 기준에 걸릴 것이라면서요.

백신을 반대하는 이들이 주로 내세우는 ‘자연 면역’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한국에서도 한때 수두 백신을 맞히지 않고, 일부러 아이를 수두에 전염되게 하는 ‘수두 파티’가 유행한 적이 있죠. 저자는 자연 면역 방식의 경우 사망률이 백신보다 현저히 높다며 “자연이 늘 선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마치 코로나19 때의 논란을 예견이라도 한 듯, 백신 접종 거부가 ‘개인의 자유’라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의 백신 논쟁은 주로 공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처럼 나타났는데요. 저자는 한 개체의 면역은 종 전체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대사회에서도 개개인의 건강은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의학적 지식뿐 아니라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의학이나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에세이에 가까운 문체로 백신에 대한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에요. 고대 신화나 문학 작품을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자의 일상을 통해 면역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