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무함마드 깐수’란 이름의 외국인 행세를 하다 간첩 혐의로 체포됐을 때의 정수일씨(왼쪽). 오른쪽은 2018년 언론 간담회 때의 모습./조선일보DB

남파 간첩 ‘무함마드 깐수’로 잘 알려진 실크로드학 연구자 정수일(91)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지난 24일 별세했다.

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1952년 베이징대에 입학했으며, 1955년 중국 국비 유학생이 돼 이집트 카이로대에 유학했다. 이후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 등에서 일하다 1963년 입북해 북한 국적을 얻었다. 평양외국어대 교수 등을 지내다가 1974년 대남 특수 공작원으로 선발돼 간첩 교육을 받았다. 동양어 7종과 서양어 5종 등 열두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꿈도 아랍어로 꿀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이후 튀니지·말레이시아 등에서 연구원과 강사로 활동했고, ‘필리핀에 거주하는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레바논 출신 학자’로 행세하며 1984년 한국에 들어왔다. 1989년 ‘신라와 아랍·이슬람 제국 관계사 연구’란 논문으로 단국대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얻었다.

1990년 단국대 사학과 초빙교수, 1994년 조교수로 임명돼 동서 문화 교류사 강의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했고, 한때 그의 수필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간호사 출신인 16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주변에서 보기에 독실한 이슬람 신도였지만 의외로 삼겹살은 잘 먹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1996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북한 측에 팩스를 보내다 안기부에 검거됐다. 결국 위장 간첩이라는 정체가 드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내조차 대경실색했다고 한다. 12년형을 선고받은 뒤 4년 남짓 복역했고 2000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2004년 ‘왕오천축국전’ 발간을 계기로 이뤄진 복역 후 첫 언론 간담회에서 ‘성동 갑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했는데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옥중에서도 연구에 몰두해 석방 직후 ‘씰크로드학’ ‘고대 문명 교류사’ 등을 펴냈고, ‘이븐 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 기행’ 등을 번역하며 국내 동서문명교류사 연구의 대표적 학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