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씨 제공

탈북민 출신의 인권운동가 박지현(52)씨가 오는 5월 열리는 영국 지방선거에서 맨체스터 지역의 홀리루드 구(區) 지방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영국 보수당은 “한국 외 지역에서 선거에 출마하는 최초의 탈북민”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아직 후보 지명인데도 불구하고 BBC 방송, 일간 텔레그래프 등 현지 주요 언론은 “영국 의회 역사에서 박씨처럼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을 가진 후보자는 거의 없었다. 선출직 대표들이 보다 더 다양한 배경에서 나와야 한다”며 박씨에 주목했다. 4일(현지 시각) 박씨를 전화로 만났다.

“13년 전 영국에 올 때 영어 한마디 못 했어요. 영국은 저에게 기회와 도전, 새로운 삶을 준 땅이죠. 이젠 지역 의원이 돼서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당찬 포부가 들려왔다.

탈북민 최초로 오는 5월 영국 지방선거에 후보로 나서는 인권운동가 박지현씨. 그는“탈북민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2008년 영국에 난민으로 정착한 박씨는 탈북 여성과 북한 아동의 인권 보호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2019년 6월에는 영국 의회가 연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박씨는 “북한 주민들이 독재 정권하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탈북을 해도 국제사회에서 난민 지위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특히 여성들의 경우 인신매매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의 피해 사실을 직접 증언했다. 박씨는 그간의 인권 활동을 인정받아 영국 ‘2018 아시아여성상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엔 국제앰네스티 브레이브 어워드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주영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민의 북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박지현씨. /박지현씨 제공

정치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묻자 박씨는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한국인 사업가로부터 받은 마스크 7000장을 영국 양로원에 기부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마스크를 받은 어르신들이 ‘난민으로 영국에 정착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우리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영어 한마디 못 했던 제게 영어도 가르쳐주고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 게 이 나라예요. 그동안 다른 탈북민을 위한 인권 활동을 주로 해왔는데 이젠 그들뿐 아니라 모든 영국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그의 당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출마 지역에 사는 한인이 별로 없는 데다가 지역 정치 성향도 박씨가 출마한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 강세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이 안 돼도 좋다”고 했다. “다른 탈북민, 난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거면 됐어요. 제가 일단 첫걸음을 뗀 거죠. 제 뒤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면 좋겠어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박씨는 1998년 고난의 행군 때 남동생과 함께 1차 탈북을 감행했다. 탈북 과정에서 중국의 농부에게 500파운드(약 75만원)에 팔려 아들까지 낳았던 인신매매 피해자다. 결국 공안에 붙잡혀 2004년에 북송됐고, 도 집결소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맨손으로 산을 개간해 농지를 만들었다. 박씨는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완전히 다리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다쳐 쓸모없게 되자 풀려났다”고 했다. 중국에 두고 나온 아들을 잊지 못해 2차 탈북해 아들을 만난 뒤 2008년 난민 자격을 얻어 영국에 정착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다 영국에 정착했지만, 자신의 뿌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박씨는 “우리 집 거실엔 태극기가 걸려있고 세 자녀들에게도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아이들 모두 영어 이름 없이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단되지 않았으면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와 정의를 누렸을 테니까요.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북한에 있는 동포들도 자유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