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라 미얀마 민주주의!”
정범래(55)씨는 미얀마 군부독재타도위원회 자문위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 공터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반대한다’고 적힌 피켓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회원 수 3만의 국내 최대 미얀마 커뮤니티 ‘미야비즈’의 운영자다. 지난 미얀마 쿠데타 발발 이후 재한 미얀마인들을 이끌고 민주화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는 이날도 미얀마인 7~8명과 함께 중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석했다. 정씨는 “중국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며 “중국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이곳을 시위 장소로 택했다”고 말했다.
미얀마와 인연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을 갔다가 미얀마의 순수한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양곤 외국어대학에서 1년짜리 미얀마어 수료 과정을 마친 뒤, 현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여행사를 운영했다. 2007년 소위 ‘샤프론 혁명(군부가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5배 인상해 수십만 국민이 들고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이 발생했다. 그는 매일 시위 현장을 영상으로 찍고 한국의 인터넷 카페에 소식을 전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미얀마 보안장교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제가 현정부 비방, 계엄령 위반 혐의로 체포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내와 아들, 전 재산을 남겨둔 채 급히 태국행 비행기를 탔죠.”
그와 함께 현장에서 사진을 찍던 AFP 통신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는 그가 떠난 다음 날 미얀마 군경 총에 맞아 즉사했다. 당시 군부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모든 이를 조준 사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했다. 일본인 기자 이외에도 그와 친했던 미얀마 친구들이 여럿 사망했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씨는 경기도 시흥 한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이달 초,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웅산 수지를 구금했다는 외신을 접했다. 미얀마 국민은 거리로 나왔다. 피가 끓었다. 제2의 고향 같은 나라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결심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재한 미얀마인들과 함께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가, 국제사회가 나서주지 않는다면 미얀마에서는 또다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것만은 꼭 막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미얀마를 상대로 쿠데타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지난 3일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군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과 플래카드를 걸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후 주말마다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들, 아웅산 수지가 소속된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장 등과 함께 한국 정당·시민단체와 긴급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있다.
정씨는 미얀마인들에게 들은 현지 사정을 전했다. “현재 시민 불복종 운동(CDM)을 주도하는 세력은 ‘MZ세대’ 젊은이들입니다. 샤프론 혁명이나 1988년 혁명 당시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2015년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래 사회주의를 버리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거듭했죠. 그 과정에서 자유와 권리, 풍요를 맛본 젊은이들이 현재 거리로 나와 불복종을 외치는 중입니다.”
분노하는 건 젊은이들뿐이 아니다. 공무원⋅경찰⋅의사⋅상인들도 시위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 나와있는 미얀마인들이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고국에 보낼 성금을 모금 중”이라며 “쿠데타 열흘 만에 한국에서만 2억5000만원이 모였다”고 했다.
정씨는 “이번 불복종 운동은 이전 민주화 시위와는 결이 다르다”고 했다. “군부는 쿠데타 도중 교도소 수감자 2만3000명을 석방하는 등의 수법으로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자경단을 조직해 대항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시위를, 밤에는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거죠. 이제 더 이상 군부 독재의 쌍팔년도 방식은 먹히지 않습니다. 미얀마의 미래는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