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각국의 주교를 새로 뽑는 과정에서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교황청 주교부 위원에 사상 최초로 여성 3명을 포함했다. 남성 성직자 위주로 운영되어 온 가톨릭 교회에서 다시 한번 ‘금기’를 깼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교회 내 여성 참여 확대를 꾸준히 추진하면서 교황청 내 주요 부처에 벌써 10여 명의 여성을 등용해 왔다.
교황청은 13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 세계 주교 선출 업무를 보좌하는 교황청 주교부 위원직에 총 14명을 새로 임명했다”며 “이 중에는 처음으로 여성도 3명 포함됐다”고 밝혔다. 바티칸 시국 행정부 사무총장인 라파엘라 페트리니(52) 수녀, 전 살레시오 수녀회 의장인 이본느 룅고아(77) 수녀, 그리고 마리아 리아 제르비노(71)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UMOFC) 회장이다.
페트리니 총장은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으로, 지난해 11월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바티칸 시국의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로마 출신으로 정치학을 전공하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이터 통신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 룅고아 수녀는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역사와 지리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2019년 바티칸 최초의 여성 수도회성(修道會省) 총회 위원이 된 데 이어, 첫 주교부 위원도 되면서 두 번 연속 바티칸의 ‘유리 천장’을 깨는 주인공이 됐다. 수도회성은 전 세계 수도원과 수도자들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제르비노 회장은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신도로도 처음 주교부 위원이 된 경우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동향(同鄕)이다. 교황과는 수십년간 교류해 온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가톨릭 교회 내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개혁 조치를 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세례를 받은 가톨릭 평신도라면 여성을 포함해 누구나 교황청의 행정 조직을 이끌 수 있도록 개정된 새 헌법의 직접적 수혜자가 됐다.
이들은 앞으로 5년간 전 세계 성직자를 대상으로 주교 후보자를 가려내 각국의 대주교에게 추천하고, 국가별 조사와 평가를 거쳐 올라온 후보들을 솎아내 교황에게 최종 후보로 추천하는 일을 하게 된다.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를 직접 계승하는 고위 성직자로, 각 나라의 지역별 교구(敎區)를 책임지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움직이는 (남성 중심의) ‘올드 보이 네트워크(나이 많은 소수의 기득권자 무리)’를 해체하려고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71) 라자로 추기경도 이번에 새 주교부 위원으로 임명됐다. 충남 논산 출신으로, 역대 4번째 한국인 추기경이자 한국인 사제 최초의 교황청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