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안 담당자로 일하며 마주치는 고풍스러운 조각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미술관 2층 특별관에 전시된 여인의 흉상 앞에는 독특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작가 이름은 아르미아 말락 칼릴.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빨간 뿔테 안경을 쓴 칼릴(45)이 다가와 웃는 얼굴로 “내가 이 작품의 작가”라고 했다. 목에 직원 신분증을 걸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전시의 제목은 ‘이집트로의 피신: 흑인 예술가와 고대 이집트, 1876-현재’다.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유색인종 예술가들이 고대 이집트에서 받은 영향을 작품 200여 점을 통해 살펴본다. 이 특별전에 메트 경비원의 작품이 나온 것이다. ‘미국 최대 미술관의 작가가 된 경비원’ 칼릴의 이야기는 뉴욕타임스·CBS 등에 보도되며 미국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11일 오전 미술관에서 칼릴을 만나 사연을 들었다.
-작품을 전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재작년에 전시실에서 두리번거리는 남성을 봤다. 평소처럼 다가가서 뭘 찾는지 물으니 미국 화가 헨리 오사와 태너(1859~1937)의 ‘이집트로의 피신’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작품 위치를 알려주고 짧게 설명을 해줬다. 그 5분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이집트 출신 아마추어 미술가인 칼릴은 고향인 이집트와 관련된 작품에 해박했다. 유창한 설명에 놀란 남성은 자신이 메트 큐레이터 아킬리 토마시노이며, 이집트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토마시노와 어떤 대화를 나눴나.
“대학 시절에 이집트에서 유화를 공부했고 지금은 뉴저지에 있는 작업실에서 고대 이집트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 작품을 틈틈이 만든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려 뒀던 작품 사진을 보여주니 놀라워하면서 내 작품을 정식으로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지 11년째였지만 내 작품이 이곳에 전시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메트 미술관은 2년마다 직원 작품 전시회를 내부적으로 연다. 최근에는 이런 전시가 관객에게도 공개된 적이 있지만, 현직 직원이 일반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인터뷰에 함께 한 토마시노는 “칼릴은 조각 도구도 고대 이집트와 비슷하게 직접 제작해 쓴다”며 “고대 이집트 미술의 기술적 측면까지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이집트 예술가라는 점에서 칼릴의 참여는 토마시노가 기획한 전시의 주제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했다.
-작품을 보면 여성의 머리 위에 풍뎅이가 있다.
“풍뎅이는 고대 이집트의 내 조상들에게 희망과 부활을 의미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미라부터 귀걸이나 반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아침마다 풍뎅이를 관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전시실에서 작품을 마주한 느낌은 어땠나.
“내 작품이지만, 보자마자 울었다. 위대한 작품들 사이에 내가 만든 조각상이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바로 옆에서 이집트의 위대한 조각가 마무드 모크타르의 작품이 내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다. 관람객들이 그 시선을 따라 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배치된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뉴욕에서 미술을 배웠나.
“내 고향은 이집트다. 어려서 나일강의 진흙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만들면서 놀았다. 이집트에 있는 대학에서 유화를 공부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다. 손재주 좋은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조각을 정식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메트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됐나.
“미국에서 목공예를 하며 살고 싶었다. 여러 차례 미국 비자를 신청한 끝에 2006년 9월 목공예 도구를 들고 뉴욕에 왔다. 바로 예술 쪽 직업을 구할 수는 없어서 공사판에서도 일을 해봤다. 힘들었지만 목공예의 꿈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몇 년 동안 수없이 많은 미술관과 스튜디오에 이력서를 냈다. 정말 운 좋게도 2012년 메트의 경비원 자리를 얻었다. 고대 이집트부터 전 세계의 걸작을 다 볼 수 있는 이곳은 내게 집과 같은 곳이다.”
칼릴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어 가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미술관에 대여된 작품의 소유권은 칼릴에게 있지만, 전시되는 동안에는 작가인 칼릴도 자신의 작품을 만질 수 없다. 오는 17일 전시가 막을 내린 뒤 작품이 어디에 보관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친 칼릴은 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관람객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네요. 저는 메트의 경비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