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스병원 김인권 병원장
서울예스병원 김인권 병원장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나가면 ‘내가 서울대생이니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오는 26일 열리는 서울대 제79회 학위 수여식 축사 연사로 선정된 김인권(74) 서울예스병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평생을 한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고 2016년에 이어 서울대 졸업식 축사 연사로 재선정됐다.

그가 한센병 환자를 처음 만난 건 우연에서 비롯됐다.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밟던 그는 1977년 국립소록도병원에 파견됐다. 당시 전공의들은 정부가 지정하는 무의촌에 가 6개월을 근무해야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김 원장은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기 전엔 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며 “막상 소록도에 도착해 환자들을 만나니 똑같은 사람인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한센병은 나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전염병이다. 이제는 2주에서 2개월 정도 약만 먹으면 감염성이 사라지고 꾸준히 치료하면 완치되는 병이지만, 과거에는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으로 여겨졌다.

1980년 공중보건의로 무의촌에서 근무해야 할 일이 또 생겼을 때 김 원장은 망설임 없이 소록도병원으로 향했다. 다리 거동이 불편함에도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살피던 신정식 당시 소록도병원장의 헌신적 모습이 감명 깊었기 때문이다. 소록도에서 지내며 친해진 환자들과 동료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에서 3년간의 공중보건의 근무를 마치고 김 원장은 여수 애양병원에서 전문의 생활을 시작했다. 공중보건의 시절 종종 수술을 도우며 연을 맺은 곳이다. 당시 애양병원에는 의사가 1명뿐이라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김 원장은 “아산병원, 삼성병원, 서울대에서 일할 기회도 있었지만 내가 없어도 잘 운영될 곳보다는 내가 꼭 필요한 곳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1983년 애양병원에는 김 원장까지 의사가 3명이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쉴 틈 없이 일하며 일주일에 수백 명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 중엔 소아마비 환자가 가장 많았고, 한센 환자는 10% 정도였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정형외과 의사인 김 원장은 한센균에 의해 비틀어진 손과 발을 교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원장은 이때 만난 환자들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2019년 애양병원 명예원장 자리에서 퇴직한 김 원장은 현재 서울예스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소아마비나 한센병 환자들이 오는 걸 꺼리는 병원도 많은데, 김 원장이 예스병원에 “내가 평생 봐온 환자들이 방문할 때 곤란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더니 소속 의사들은 “당연하다”는 말로 환영해줬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는 한 달에 1~2명이 방문해 김 원장의 치료를 받는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는 성경 구절을 좋아하는데, 환자들이 아직까지도 나를 찾아주다니 언제나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원장은 2016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한 차례 축사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너무 좋은 직장을 찾지 말길 바란다”며 “동요 없이 30여 년간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던 가장 큰 힘은 선택을 내가 했고,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다”라고 연설했다. 김 원장은 올해 축사에서는 “사회에 나가면 서울대생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다시 우열이 정해지니, 서울대생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해 공동의 선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