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에서 ‘쌍둥이 동물 농장’을 운영하는 남우성씨가 전국을 돌면서 거둔 다치고 병든 동물들. 맨 왼쪽부터 대퇴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여덟 살 호랑이 ‘루시’. 또래에 비해 덩치가 왜소하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뒤 ‘보기 흉하다’는 관람객 민원에 경기 일산의 한 동물원 골방에 방치됐던 과나코. 맨 오른쪽은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2023년 경기 가평의 동물원에서 온 암·수사자 한 쌍의 모습. /강릉=구아모 기자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는 4만2975㎡(약 1만3000평) 규모의 ‘동물 요양원’이 있다. 늙거나 부상당해 거동조차 어려운 호랑이와 하이에나 등 맹수는 물론 산양과 공작새, 거북이 등 온갖 동물 1000여 마리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쌍둥이 동물 농장’의 사장 남우성(34)씨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이들을 먹이고 돌본다. 아버지(69)가 사슴·소 몇 마리를 가지고 와 시작한 조그만 농장이 소문을 탔고, 전국에서 보기 흉하다며 외면당한 동물이 모여들어 이렇게 커졌다.

남씨는 20대 중반이었던 2016년 아버지와 이곳을 열었다. 배우 꿈을 꾸면서 서울의 한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지만, 9년 전 다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40여 년 전 아버지는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녹용을 먹이겠다며 농장 옆 남는 터에 사슴 몇 마리를 키웠다. 녹용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가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이후 아버지는 ‘동물들을 보면 좋다’며 유기 동물들을 돌보기 위한 땅을 더 사들였다. 농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온 동네 가축이 남씨 농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남씨는 “놀러 온 아이들이 동물들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참 좋다”는 아버지 말에 결국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로 결심하고 대학도 자퇴했다.

지난 6일 오후 강릉 쌍둥이 동물 농장 실내 방사장에서 남우성씨가 유기견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 /강릉=구아모 기자

지난 6일 찾은 이 농장 한쪽에선 호랑이 ‘루시’(8세 암컷)가 뒷다리를 절룩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루시는 대구의 한 동물원에서 대퇴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구석에서 방치돼 천덕꾸러기 취급만 받았지만 남씨가 거둬들여 이 농장으로 왔다. 유일하게 동물원에서 이름이 붙은 동물이다. 남씨는 “처음엔 동물들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는데, 사람과 동물의 수명이 같지 않으니 아프거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감정적 충격도 컸다”며 “가급적 동물에게 이름을 안 붙이려고 한다”고 했다.

경기 일산에서 데려온 과나코(6세 암컷)는 한쪽 눈이 없다. 눈이 아파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뒤 ‘무섭다’는 민원이 쏟아졌고, 창고에 숨어 지냈다. 2023년 가평에서 데려온 세 살 암·수사자 남매도 있다. 남씨는 “(발견 당시) 비정한 어미에게 얻어맞아 눈 주위가 띵띵 부어 있었다”고 했다. 경영난으로 폐업한 경남 부경동물원에서 구조된 열아홉 살짜리 암컷 백호도 이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발견 당시엔 굶고 야위어 뼈가 다 드러났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 인간 나이로 따지면 아흔 살이 넘는 백호는 편안한 모습으로 졸고 있었다. 남씨는 지금도 아버지와 전국 동물원을 돌면서 버려진 동물들을 거두고 있다.

전국에 버려진 반려동물들도 남씨 농장으로 모이고 있다. 강아지·고양이는 물론 햄스터, 앵무새, 미어캣, 사막여우도 있다. 전국에서 남씨 농장을 찾아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 남씨는 “직접 키우던 아이(반려동물)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밤에 몰래 (농장 인근) 수풀에 버리고 가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라며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고 했다.

입장료 9000원을 받지만 농장 운영은 쉽지 않다. 남씨는 “날씨가 궂을 때는 관람객이 거의 없다”며 “사료 값을 충당하려고 아버지와 농사도 짓고 있다”고 했다. 그는 ‘1호 동물 실버타운’을 꿈꾼다고 했다. “건강한 동물만 보여주는 동물원이 아니라, 아픈 동물도 함께 사는 곳이면 좋겠다”며 “병들었다고 생명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늙고 병든 동물들이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외딴 시골에서 동물원을 운영하기가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남씨는 “강릉 오지에서 동물원 한번 가려면 서울까지 1박 2일이 걸렸다”며 “강원도 인근에서 온 아이들이 동물들을 보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볼 때는 힘든 것도 다 잊어버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