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산불로 폐허가 된 경북 곳곳에서도 농민들은 “어떻게든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한다”며 호미나 가위를 들고 밭으로 나섰다.

지난달 31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과수원에서 만난 장우석(37)씨는 가위를 들고 사과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화마가 휩쓸고 가 사과나무 3000그루 중 1000그루가 검게 탔다. 트랙터와 농약 살포기 등 농기계 9대도 모두 녹아 뼈대만 남았다. 우물엔 잿더미가 둥둥 떠 있었다.

장씨는 2011년 경북 구미시에서 귀농했다. 2만㎡(약 6000평)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한 해 농사를 다 망쳤다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다시 나왔다”며 “농사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게 농부 아니냐”고 했다.

경북 영덕군 축산면에 사는 송이버섯 농부 이영범(55)씨는 요즘 매일 산을 오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소나무를 찾기 위해서다. 그는 3대째 이곳 소나무 숲에서 송이버섯을 기르고 있다. 송이버섯은 30년 이상 자란 소나무 아래에 버섯균을 뿌려 키운다. 이 산 기슭 33만㎡(약 10만평)가 이씨 농장이다. 지난 25일 영덕을 덮친 산불에 소나무 2만5000그루가 대부분 고사했다고 한다.

이씨가 송이버섯이 자라던 소나무를 손으로 문지르자 검댕이 가득 묻어 나왔다. 이씨가 직접 묘목부터 심어 키운 나무였다. 주변 흙도 모두 검게 변했다.

의성군 점곡면 마늘밭에서 만난 신모씨는 마늘 새순을 닦고 있었다. 신씨의 마늘밭은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피했다. 마늘밭 바로 옆의 산은 산불이 덮쳐 새카맣게 타버렸다. 신씨는 “우리 밭에도 재가 날아와서 새순에 잔뜩 묻었다”며 “4월에 마늘이 영그는데 지금부터 새순을 잘 닦아 햇볕을 받게 해야 된다”고 했다.

영양군 석보면 화매 1리에선 농민 김진득(67)씨 부부가 고추와 배추에 물을 주고 있었다. 김씨는 “불길이 닥칠 때 미친 듯이 물을 뿌려 밭을 지켜냈다”며 “이 애들(농작물)을 잘 키워내려고 나왔다”고 했다.

경북도는 31일 산불 피해 지역을 돕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특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도가 보유한 농기계 3000여 대도 무료로 빌려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