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옥산면 오창과학산업단지 공영주차장. 150대 규모의 무료 주차장인 이곳의 한편을 캠핑카와 이동식 트레일러 60여 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38)씨는 “근처 공장에 출장 왔는데 차 댈 곳이 없어 이중 주차를 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공영주차장 사정도 비슷했다. ‘행사가 있으니 캠핑카를 모두 이동 주차해 달라’는 현수막이 걸렸지만, 주차 중인 캠핑카와 트레일러가 40여 대에 달했다. 일부 차량은 오랫동안 방치한 듯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주변에는 캠핑 후 버린 음식물과 고장 난 캠핑용품 등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LP 가스통을 매단 차량도 눈에 띄었다. 주민 최혁진(43)씨는 “캠핑카를 장기간 세워 놓는 것도 문제지만, 주말에 캠핑을 즐긴 뒤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가는 비양심적인 사람도 많다”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차박(車泊)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캠핑 차량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캠핑카 전용 주차장이 없는 곳이 많아 전국 곳곳의 무료 주차장과 한적한 외곽 도로변, 공터 등이 ‘알박기식’ 장기 주차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장기 주차하는 캠핑카 때문에 주차 공간 부족에 시달린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단지 입구에 외부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에 사는 허모(51)씨는 “아파트 주차장 구석 쪽에 몇 달씩 세워 놓은 캠핑카가 여러 대”라며 “덩치가 커서 옆에 경차 정도나 주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캠핑족들은 “주차장이 부족해 애를 먹는다”고 하소연한다. 아파트에는 가구별 주차 대수가 정해져 있고, 유료 주차장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 공영 무료 주차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등록된 캠핑카(2020년 기준)는 5610대, 트레일러는 1만7979대다. 2015년 각각 1146대, 4692대였는데, 5년 새 4~5배로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국의 캠핑카와 트레일러 전용 주차장은 경기 안산·용인, 인천 남동구, 대전 유성구, 충남 아산시 등 9곳(404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주민과 캠핑족 사이의 실랑이에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파출소 관계자는 “장기 주차 문제뿐만 아니라, 공용화장실에서 캠핑족들이 전기와 수도를 펑펑 쓴다는 주민 신고가 자주 접수된다”고 말했다.
갈등이 잇따르고 있지만, 지자체는 별다른 조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캠핑카와 이동식 트레일러는 모두 자동차 번호판을 달고 정식 출고돼 일반 공영주차장 등에 세워놓을 경우 불법 주차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면도로나 공터 주차도 마찬가지다. 강릉시 관계자는 “주정차 금지 구역을 제외한 이면도로 등에 주차해도 단속할 권한이 없다”며 “차량 통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계도 조치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공영주차장 유료화에 나서고 있다. 강릉시는 이달 말 강문해변 제1공영주차장을 시작으로 안목해변 일대 강릉항 주차장 등을 유료로 전환할 방침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증한 캠핑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일반 차량이 주차하지 않는 장소에 캠핑카 전용 주차장을 늘리고, 정부 차원에서도 관련 법규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