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조개가 안 나와 죽겄슈. 이름을 ‘황금조개’로 바꿔야 것슈.”
5일 오후 충남 홍성군 남당항 수산센터. 겨울철 별미 새조개를 찾자 횟집 주인 한은자(69)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평소 같으면 수조에 꽉 차 있어야 할 새조개가 바닥에만 깔려있었다. 한씨는 “지금 있는 새조개 20~30㎏을 손질하면 속살은 10㎏ 정도인데 점심 한끼 장사하기도 어려운 양”이라며 “작년 이맘때는 매일 새조개 100㎏ 씩은 받아 쌓아 놓고 팔았는데 올해는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남당항 수산센터 60여개 점포들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남 여수시와 경남 남해군에서 어렵게 구한 새조개를 10~40㎏정도를 확보했을 뿐이다. 평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물량이다.
새조개 공급 부족에 가격도 크게 올랐다. 남당항에서는 손질한 새조개 1㎏을 샤브샤브로 먹으려면 14만원을 내야한다. 지난해 8만원보다 75% 오른 가격이다. 횟집 주인 박모(45)씨는 “손님들이 새조개를 주문하면 ‘14만원인데 드시겠냐’고 한 번 더 물어본다”면서 “장사꾼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했다.
겨울이 제철인 새조개가 국내 바다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일부 어민들은 “그물을 내려봐야 빈 껍데기만 올라온다”면서 새조개 조업을 중단한 상태다.
5~30m 수심의 모래 섞인 진흙 바닥에서 자라는 새조개는 충남 홍성과 전남 여수, 경남 남해에서 주로 잡힌다. 속살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새조개로 불린다. 단백질과 철분, 타우린, 필수 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비싼 가격 탓에 ‘귀족 조개’라고도 한다.
12월부터 5월 사이가 제철이지만 현재 어민들은 손을 놓고 있다. 서흥구 홍성군 상황리 어촌계장은 “배 두척이 나가면 새조개를 하루에 100~200kg씩 잡았었는데 올해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배를 띄우면 손해인데 누가 나가겠나”라고 했다.
최근 3년간 홍성 앞바다 195ha(195만㎡) 규모의 어장에선 새조개를 연평균 50t씩 건져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홍성군의 공식적인 새조개 수확량은 0t이다.
7일부터 열리는 남당항 새조개 축제도 비상이다. 해마다 40만명이 찾아왔던 축제에 판매할 새조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축제 이름을 ‘새조개 축제’에서 ‘새조개와 함께하는 수산물 축제’로 바꿨다.
김용태 새조개 축제 추진위원장은 “축제가 시작되면 남당항에서 하루에 5~6t가량 새조개가 소비되는데 물량이 없으니 속이 탄다”면서 “남쪽 바다에서 최대한 찾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축제에 대비해 남쪽 바다 어민들과 새조개 24t을 매입하는 선계약을 체결해 놨지만, 모두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지난 2023년 새조개 풍년이 일었던 경남 남해군 해역도 올해는 흉작이다. 당시 전국 새조개 생산량 1073t 가운데 889t(83%)이 경남에서 나왔다. 남해군 인근 해역에서 새조개를 잡는 권한천(67) 선장은 “바다 바닥을 긁어봤지만 없거나 빈껍데기만 올라와 조업을 멈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새조개 산지인 전남 여수에서도 새조개가 예년만큼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여수의 한 새조개 유통업자는 “매년 특상품 새조개를 1kg당 8만~10만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설 명절 지나서야 간신히 잡힌 소량의 새조개가 특상품 기준 1kg당 16~20만원 수준에 팔린다”고 말했다.
새조개 실종의 주된 요인은 지난 여름 바다 수온 상승으로 인해 대부분 폐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양식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새조개의 경우 5월쯤 태어나 여름을 거쳐 1년이 지나면 6~7cm크기로 자란다. 수온 15~25도 사이에서 잘 자라고 30도가 넘어가면 폐사가 시작된다.
그런데 지난해 새조개 어장 해역의 수온은 30도를 넘나들었다. 홍성 앞바다 천수만 해역은 한때 34.4도로 최고 수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온이 28도를 넘어가면 발효되는 고수온 특보도 올 여름 국내 바다에서 71일동안 지속돼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64일, 2023년에는 57일로 최근 3년간 여름철만 되면 고수온 특보가 이어졌다.
경남과 전남, 충남 등 지자체 수산연구원에서는 새조개 양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올해는 연구를 위한 새조개 수급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남기웅 충남수산연구소 생산연구팀장은 “연구 목적으로 홍성 천수만 바다에 뿌린 새끼 새조개 1000마리가 모두 폐사한 걸 보면 자연에 있는 새조개는 10% 이하만 살아남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