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남 거제시 하청면 맹종죽(孟宗竹) 테마파크. 대나무 종류 중 하나인 맹종죽 3만여 그루가 숲을 이루는 이곳은 진한 죽향(竹香)으로 가득했다. 코로나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에 대나무의 청량함이 스며들었다. 생명력과 생동감을 표현하고자 이곳 공원 이름을 ‘숨소슬(숨이 트인다는 의미)’로 지었다. 최대 높이 20m까지 자라는 맹종죽은 햇빛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자랐다.
자녀 둘과 함께 대구에서 왔다는 김인영(44)씨는 “코로나를 피해 여행할 곳을 찾다가 이곳 대나무숲을 찾게 됐다”며 “그동안 꽉 막힌 속이 한번에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남해안의 쪽빛 바다와 보석 같은 섬으로 유명한 경남 거제는 국내 최대 맹종죽 군락지다. 여태우 거제맹종죽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날씨가 온화하고 사시사철 소금기 섞인 해풍이 부는 거제의 기후가 맹종죽이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이라고 했다.
◇전국 맹종죽의 80%가 거제에
거제시 하청면은 맹종죽이 주인이다. 집 옆 길가부터 야트막한 언덕, 뒷산 곳곳에서 숲을 이룬 맹종죽을 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우리나라 대나무 자원의 분포 현황’에 따르면 거제에서 맹종죽이 자라는 지역은 232만㎡로 우리나라 전체 맹종죽 분포 면적(291만㎡)의 80%에 달한다.
거제가 맹종죽 고장이 된 것은 1926년 일본 규슈 지방으로 산업 시찰을 갔던 이곳 주민이 맹종죽 3그루를 가져와 심은 것이 계기가 됐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식물이다 보니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도 군락을 이뤘다. 맹종죽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나무 품종 중 가장 굵다. 전남 담양에서 자라는 대나무인 ‘솜대’ 지름이 10cm인데, 맹종죽은 20cm에서 최대 30cm에 이른다. 높이는 10~20m까지 자란다.
맹종죽은 이름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옛날 중국에 맹종이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병상에 있던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 요리를 찾았다. 눈 쌓인 대밭에 죽순이 있을 리 없었다. 죽순을 구하지 못한 맹종이 대밭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자 하늘이 감동해 맹종의 눈물이 떨어진 땅에 죽순이 돋아나게 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할 때 사용하는 사자성어 ‘맹종설순(孟宗雪筍)’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맹종죽은 죽순으로 유명하다. 산림청 임산물생산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에서 생산된 죽순은 약 439t인데, 거제에서 383t(87.3%)을 생산했다. 전남 담양 등의 죽순 전문 식당을 비롯해 한식당, 일식당, 국내 호텔 뷔페 등에 음식 재료로 공급됐다. 맹종죽 죽순은 봄기운을 받아 4월쯤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대나무 종류 중 가장 빨리 죽순이 나오는 데다, 1년에 딱 한 달 동안만 채취돼 거제의 숨은 보물로 불린다.
김형호 거제시 산림녹지과장은 “죽순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과 콜레스테롤 억제에 좋고, 체내 나트륨을 배출시켜 고혈압 환자에게도 이롭다”며 “특히 맹종죽순은 아삭한 식감과 단단한 육질,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했다.
또 다 자란 맹종죽은 밑동이 굵고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잘라서 필통이나 수저 세트, 연필꽂이 등 각종 공예품의 재료로도 사용한다.
◇코로나 속 죽림욕 위해 22만명 방문
맹종죽은 거제의 중요한 관광자원 중 하나다. 거제시는 2012년 5월 국비 등 44억7000여만원을 투입해 하청면에 맹종죽 테마파크를 개장했다. 맹종죽을 주제로 한 체험형 공원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10만4800여㎡ 부지, 3만여 그루 맹종죽 아래에서 죽림욕(竹林浴)을 즐길 수 있다. 외줄타기와 사다리 오르기 등을 할 수 있는 모험의 숲, 서바이벌 게임장, 공예 체험장 등의 체험 시설도 갖췄다.
공원 운영 주체인 거제맹종죽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코로나 와중에도 2021년 10만6000여 명이 맹종죽 테마파크를 찾았다. 2020년에도 11만4000여 명이 방문했다. 거제시 농업기술센터 원준우 주무관은 “테마가 있는 산책로 조성 등 콘텐츠를 더욱 강화하고, 주차장 확장 등 방문객 편의 시설을 정비할 계획”이라며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면 매년 4월 말 열었던 맹종죽 축제도 내년엔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거제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맹종죽을 활용하는 다양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시는 지난해 11월 민간 기업과 친환경 대나무 칫솔을 만드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2020년에는 맹종죽 상품화 방안과 관련한 연구 용역도 실시했다. 연구 용역 결과 캠핑용 숯, 죽순을 이용한 간편 도시락 개발, 맹종죽 굿즈(goods·기획상품) 개발 등을 통해 맹종죽 활용도를 높일 경우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54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맹종죽이 생산 농가의 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거제 관광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거제=김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