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에는 전구가 주렁주렁 달린 오징어잡이 배가 5~6척씩 묶음으로 정박 중이었다. 이 항구의 오징어잡이 배는 총 54척. 대부분 3개월 넘게 조업을 포기하고 있다. 선주 김모(64)씨는 “가끔 배를 몰고 나가는 선주가 있지만 족족 적자만 보고 돌아온다”며 “배를 팔아버리려고 내놨는데도 누구 하나 묻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34년째 오징어를 잡아온 윤국진(64)씨는 지난 4일 큰마음 먹고 배를 끌고 출항했다가 또 허탕을 쳤다. 오징어 성어기인 9월부터 지금까지 딱 두 번 나갔다. 그는 “한번 나가면 1000마리 정도는 잡아야 인건비라도 건지는데, 2시간 동안 오징어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했다. 속초의 채낚기 어선 선주 박정기(72)씨는 최근 어선에 장착한 조상기(오징어 잡는 어구)를 모두 떼어냈다. 투망으로 도루묵과 홍게 등을 잡으려는 것이다. 박씨는 “먹고 살려면 뭐라도 잡아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국민 수산물인 오징어가 자취를 감췄다. 어획량이 급감하자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이 속출하고 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어획량 부진으로 어민들은 조업을 할수록 적자”라며 “인건비 이자 등 고정비용 지출로 월 3000만원가량 적자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5일 여당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오징어잡이 어민들을 위해 어민당 3000만원의 긴급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담보 여력이 없는 어민들은 수협이 대신 보증을 서주겠다”고 했다. 긴급 대출은 수협을 통해 가능하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오징어 위판량(1일부터 27일까지 기준)은 958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20t)보다 60%가 줄었다. 올해 누적 위판량도 2만3700t으로, 지난해(3만5595t)보다 33%가 감소했고, 2021년의 절반도 안 된다.
오징어 주산지인 강원과 경북 동해안은 심각하다. 강원도의 오징어 어획량은 2000년대 초 2만t 수준이었는데 2014년 9846t에 이어 작년엔 3504t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11월까지 1286t밖에 못 잡았다. 경북도 2018년까지 연간 5만t이 잡혔는데, 지난해 3000t 수준으로 줄더니 올해(11월 기준)는 2000t밖에 안 된다. 김해수 울릉어업인연합회장은 “(어획량이) 매년 반 토막이 난다. 울릉도 오징어 명성은 이제 옛말이 됐다”고 했다.
어획량이 줄자 가격은 뛰었다. ‘금(金)징어’라고 불릴 정도다. 한국물가협회의 ‘11월 물가 동향’을 보면 국내산 생물 오징어(大)가 마리당 1만1950원, 지난달 8410원보다 42.1% 올랐다. 국내산 냉동 오징어(大)도 전월 5190원보다 9.2% 증가한 5670원에 거래됐다. 강릉에서는 지난달 생물 오징어 1상자(20마리)가 27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해 가격(5만원)의 5배 이상이다.
오징어 어획량 감소는 수온 상승과 중국 어선의 남획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표한 ‘2023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 보고서’를 보면 1968~2022년까지 55년간 우리나라 바다의 연평균 표면 수온 상승률은 1.36도로, 세계 평균 상승률(0.52도)보다 2.5배 높았다. 동해안은 국내 평균보다 높은 1.82도였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오징어의 적정 서식 수온이 15~20도이지만, 동해안 수온이 상승해 오징어 어군이 북상하고 있다”며 “산란을 위해 울릉도 등으로 남하하는 오징어 역시 북한 수역에서 무분별하게 잡혀 우리 어장이 황폐화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북한과 중국이 동해 공동 어로 협약을 맺으면서, 중국 쌍끌이 저인망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오징어를 마구 잡아들이고 있다. 2004년 북한 해역을 찾은 중국 어선은 144척에 불과했지만, 2020년엔 2389척으로 16배 이상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