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울산 중구 태화강국가정원. 은빛 억새와 팜파스 그라스, 버드나무, 핑크뮬리, 흰말채나무, 황매화 등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부산 수영구에서 친구들과 왔다는 박주희(45)씨 “겨울인데도 억새와 평소 보기 힘든 꽃과 나무가 많아서 참 좋았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화강국가정원이 국제정원박람회 유치하겠다며 도전하고 나섰다. 울산시는 “최근 산림청에 ‘2028 국제정원박람회’ 국제행사 개최 계획서를 제출했다”고 18일 밝혔다.
계획서에 따르면 오는 2028년 4월 울산 중구 태화강국가정원(84만㎡)과 남구 삼산·여천매립장(35만㎡), 남산문화광장(2만㎡) 일원 등 121만㎡(36만6000여 평) 부지에서 국제정원박람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사업비는 1000억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산림청은 울산시의 계획서를 검토·보완한 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에 계획서를 넘겼다. 기획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타당성 사업 조사 연구용역을 토대로 사업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승인이 나면 최대 30%까지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타당성 연구 용역 결과는 오는 7~8월쯤 나올 전망이다.
울산시는 지난해 9월 전남 순천에서 열린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 총회에서 관계자들을 만나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의사를 분명히 했다. AIPH는 국제정원박람회 개최를 승인하는 기구다. 1948년 스위스에서 설립돼 현재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비정부기구다.
국제정원박람회는 전 대륙에서 한 국가가 개최하는 세계박람회(엑스포)와 달리 아시아, 유럽 등 대륙별로 한 도시에서 개최된다. 현재까지 아시아에선 울산 외에 유치 의사를 표명한 곳이 없어 경쟁 상대는 없는 상황이다. 박용환 울산시 미래정원팀장은 “하지만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31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야 해 유치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국내 승인 절차와 별개로 이달 중 AIPH에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신청서도 제출할 예정이다. 오는 3월 중동 카타르에서 열리는 AIPH 총회를 통해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를 공식 선언하고, 회원국에 개최 계획을 설명한 뒤 지지를 호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유치 신청서 제출 이후 AIPH는 울산에 실사단을 파견하는 등 심사를 거쳐 오는 9월 폴란드 국제정원박람회에서 열리는 총회를 통해 2028년 개최지를 선정·발표한다. 울산시는 유치 활동 과정에 ‘중공업 수도’에서 산업생태도시로 변화해 온 울산의 비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산업과 생태가 모순 관계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관광 등 산업과 생태가 공존, 상생 관계로 변했다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울산시 이석용 녹지정원국장은 “과거 산업화·도심화의 부작용으로 오염됐던 태화강이 생명의 강으로 거듭난 이야기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화강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강에 흘러든 생활 오수와 공장 폐수로 오염됐다. 2004년 울산시는 ‘생태 도시 울산’을 선언하며 태화강 살리기에 나섰다. 시민들도 동참했다. 이를 통해 태화강은 은어와 연어, 수달, 고니 등 동식물 1000여 종이 사는 맑은 강으로 부활했고, 2019년엔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인 정원 거장으로 태화강국가정원을 자연주의풍으로 조성한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79)와 바트 후스(Bart Hoes·66)도 지난해 5월 울산을 찾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를 지원하겠다며 힘을 보태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해 9월 독일연방정원박람회장을 찾아 박람회 운영 상황을 둘러봤다.
울산시는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할 경우 생산 유발 3조5000억원, 부가가치 1조4000억 원, 취업 유발 2만4223명 등의 경제적 기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의 한 정원 전문가는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는 순천만을 중심으로 호남권에 편중된 한국의 정원 문화와 산업 역량을 영남권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람회 개최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정부의 승인 심의를 통과해야 하고, 행사 콘텐츠를 좀 더 독창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또 박람회 개최 장소 간 연계 교통 수단과 편의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김두겸 시장은 “국제정원박람회를 반드시 유치해 울산의 아름다운 태화강과 생태정원을 전 세계에 선보이고 산업과 생태가 공존하는 도시, 울산을 완성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