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작년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연합뉴스 로이터

산림청이 ’30년간 어린 나무 30억 그루 심기'를 내세우며 근거로 들었던 미국 ‘나무 1000억 그루 심기’와 캐나다 ’20억 그루 심기'가 환경단체 반발과 예산 문제 등으로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 심기가 세계 각국 주요 어젠다로 확산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지만 사실과 달랐던 셈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작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금은 (기후변화에) 비관할 때가 아닌 낙관할 때”라며 ‘1조 그루’ 캠페인에 동참한다고 밝힌 바 있다. 1조 그루 캠페인은 WEF가 “미국과 아마존, 인도 등지에서 기존 숲 보전과 재조림으로 이산화탄소를 저감하겠다”며 발표한 계획. 당시 파괴된 산림을 복원한다는 WEF 계획에는 동의하는 환경론자가 많았다.

그러나 작년 2월 미 하원에서 ‘1조 나무법(Trillion Trees Act)’이 발의되자, 곧바로 환경 단체 등의 반발에 부닥쳤다. 1조 그루 심기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30년간 매년 33억 그루씩 총 1000억 그루를 심어 탄소를 흡수하고, 매년 목재 수확량도 늘린다’는 내용이다. 대표 발의자인 브루스 웨스터맨 미 공화당 하원의원은 “사람처럼 식물도 어린 나이에 빨리 자라고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한다”며 “지속적으로 나무를 자르고 새로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미국 내에서 순수한 조림이나 재조림은 어렵고, 기존 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그린피스는 “기후 행동을 빙자해 벌목 산업을 보호하려는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불과하다”고 했다. 시에라클럽 등 환경 단체 95개는 하원 천연자연위원장에게 반대 서한을 보내 “어린 숲은 탄소를 저장하는 데 능숙하지 않아 새 묘목이 성장할 때까지 수십 년간 어떤 기후적 이득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벌목 후 어린 나무를 새로 심더라도 캠페인 목표 연도까지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와 신경전을 벌이다가 전격적으로 ‘나무 심기’를 선언했다”는 말도 나왔다.

‘1조 나무’ 법안은 이후 1년 이상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미 상원에서는 “기존 산림을 보호하고, 벌목은 줄인다”는 내용을 포함한 나무 심기 법안이 함께 논의 중이다. 이른바 ‘어린 나무 심기’가 반(反)생태적인 데다 탄소 감축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산림청은 또 미국과 함께 캐나다도 향후 10년간 20억 그루를 심어 온실가스를 흡수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트뤼도 총리가 2019년 공약으로 나무 심기 정책을 발표했지만 첫 삽도 뜨기 전에 예산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당초 10년간 나무 20억 그루를 심는 데 총 31억6000만 캐나다달러(약 3조원)가 든다고 밝혔으나, 최근 의회예산처(PBO)는 두 배 가까운 59억4000만 캐나다달러(약 5조500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결과적으로 산림청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바탕 논란을 빚은 정책과 거의 비슷한 전략을 내놓고 “산림 경영”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는 양상이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산림청 계획을 시작 단계부터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산림청 당초 계획대로라면 들어갈 예산만 최소 6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산림청은 최근 ‘관련 예산 규모를 공개하라’는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질의에 “사업별 세부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현재 조림 사업에 매년 1000억여원의 국비 보조금이 투입되는데, 산림청은 30년간 식재 나무 수를 연평균 2배 늘리겠다고 했다. 또 매년 2000억원가량 들어가는 숲 가꾸기는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2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한 바 있다. 따라서 향후 30년간 매년 추가로 약 2000억원씩 국비 보조금만 6조원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또 조림과 숲 가꾸기에 지방비가 최대 50% 필요하고, 임도(林道) 설치 및 사방 사업 등 각종 연관 예산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30년간 10조~20조원 이상 더 필요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산림청은 “건강한 숲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탄소중립'과 관련해서는 협의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오는 9월 사업 내용과 예산을 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