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대폭 상향하는 방안을 내놨다. 기존 목표는 2018년 배출량(7억2760만t) 대비 26.3%(약 2억t) 줄이는 것이었는데 앞으로 8년 남짓 기간 온실가스를 이보다 50%(1억t) 더 줄여 감축량을 40%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8일 ‘NDC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산업계는 “비현실적” “탄소 배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이 잇따를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40% 이상 돼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진 지 한 달도 안 돼 나왔다. 2030 NDC를 35% 이상으로 못 박은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로 감축 목표가 최소 40%는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탄소중립법 논의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달성 가능한 감축량 최대치를 2018년 대비 32% 수준으로 제시했는데, 국회는 아랑곳 않고 35% 이상으로 올렸고 정부는 대통령 요구대로 이번에 40%로 밀어붙인 것이다. 한 소식통은 “일부 정부 부처가 ‘산업계를 설득하려면 37.5%가 최대치’라는 의견을 여러 번 제시했으나 결국 관철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매년 온실가스를 4.17%씩 감축해야 한다. 연평균 감축률로 볼 때 미국과 영국(2.81%), 유럽연합(1.98%)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라며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달 말 NDC를 확정하고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COP26에서 ‘2023년 COP28′을 유치하려 공을 들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제 행사에서 ‘보여주기식’ 발표를 위해 제조업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산업 구조를 무시하고 과도한 목표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임기가 7개월밖에 남지 않은 현 정권이 NDC 달성 부담을 차기, 차차기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2030년 NDC는 수차례 요동쳤다. NDC를 처음 수립한 2016년에는 과거 배출량이 아닌 2030년 배출 전망치(BAU)를 기준으로 37%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 정부 때인 2018년엔 감축량을 유지하되 국내 감축 책임을 25.7%에서 32.5%로 늘리고 해외 감축분을 줄이는 내용으로 ‘2030 온실가스 로드맵’을 수정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에 ‘2017년 대비 24.4% 감축’이라며 BAU 대신 절대량 기준으로 목표치를 강화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과 일본의 탄소 중립 선언이 나오자 쫓아가듯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더니 이번에 다시 2030년 NDC를 40%로 올리라고 또 주문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5배 속도전
8일 정부가 제시한 2030년 NDC 상향안의 핵심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급격하게 확대하는 것이다. 전력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44.4%로 전체 감축 목표(40%)를 웃돈다.
정부는 남은 8년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5배가량 확대해 현재 6%대인 비율을 30.2%(184.9TWh)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확정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21.7TWh였는데 불과 1년 만에 52%나 높인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재생 설비 용량도 기존 58GW에서 88GW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1GW의 태양광 설비에 13.2㎢ 부지가 필요하다. 정부 목표량을 채우려면 서울 땅(605㎢)의 두 배에 달하는 국토(1162㎢)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하는 것이다. 산지와 농지를 황폐화하며 태양광을 늘리는 정책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NDC 토론회에서 박종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농지를 훼손하고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태양광 산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탄소 감축 대안으로 포함된 혁신 기술이 상용화하기까지 3~7년 이상 걸리는 점도 문제다. 산업부에 따르면 석탄을 LNG로 전환하는 과정은 2024년부터 본격화한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도 2025~2027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구윤모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안에 따르면 향후 5~6년간은 감소세가 크지 않다가 2030년 또는 그 직전에 크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목표 달성의 불확실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2030년 전력의 3.6%를 ‘암모니아 발전’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국내 기술이 확보될지 모른다. 산업부는 “올해부터 암모니아를 혼소 발전하는 일본의 실증 사례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20% 혼소를 기준으로 2027년부터 상용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에 따르면 2030년까지 가동 중단을 앞둔 원전은 10기(8.45GW)로 60.6TWh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임 소장은 “무탄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제쳐 놓고 생경한 암모니아 발전이나 재생에너지를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남들은 손발을 다 써서 킥복싱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손만 써서 권투하겠다는 식”이라고 했다.
◇비용 공개 또 미룬 정부
이날 NDC 온라인 토론회에서는 “전기 요금 등 탄소 감축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민 대다수와 주력 산업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도 정부는 이번에도 “추산이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는 산업 전환을 위한 투자의 성격도 있다”며 “기술 혁신이 굉장히 빨리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비용 상승과 하락 요인이 둘 다 있어 정확한 비용 추계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NDC 상향으로 국내총생산(GDP)이 기존 전망치보다 0.07~0.09% 떨어질 것”이라는 탄소중립위 전망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이종수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GDP 전망에서 전력 가격의 변화는 반영됐지만 전환에 따른 여러 산업에서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며 “연료 가격 등 비용 상승이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산업들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