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여주보 인근 남한강 변에는 모래톱 언덕 곳곳이 연보랏빛 국화 모양 꽃들로 물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높이 40~50cm의 하늘하늘한 줄기 위에 삐죽한 잎사귀들, 노랑 점을 찍은 듯한 꽃술 주위로 엷은 보라색 꽃잎을 둘렀다. 세계적으로 남한강 일대에서만 발견된다는 멸종 위기 2급 식물 ‘단양쑥부쟁이’다.

13일 오후 경기 여주시 대신면 남한강 지천변에 단양쑥부쟁이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4대강 사업 당시 멸종위기 2급인 단양쑥부쟁이의 유일한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반대가 심해 공사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으나, 11년 지난 지금 여주보 하천 인근 등에서 대거 서식하는 게 확인됐다. /고운호 기자

이 군락을 발견한 경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이곳은 10년 전 4대강 사업 공사 때 파낸 준설토를 쌓아둔 장소”라며 “진흙 속에서 싹을 틔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멸종위기종 서식지라는 푯말도, 보호 펜스도 없다.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대대적인 ‘환경 파괴’ 논란을 일으키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식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서식지는 잡초만 무성

단양쑥부쟁이는 최대 1m 높이의 국화과 두해살이 풀로, 충북 단양~경기 여주의 남한강 변 척박한 모래땅에 서식한다. 충주호 수몰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4대강 사업 공사 때 다시 발견됐다. 당시 환경 단체들이 모래톱에 서식하는 물고기 흰수마자 등과 함께 단양쑥부쟁이를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멸종 위기 12종’에 포함해 대대적으로 공사 반대 운동에 나서면서 여주 일부 구간에서 공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단양쑥부쟁이 서식지 8곳 2만8000여㎡를 보호 조치하는 등 정부 대책도 나왔다. 당시 정부는 “단양쑥부쟁이는 야생 적응이 가능하고 대규모 복원이 가능하다”고도 했지만 환경론자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서식지를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서 옮겨온 단양쑥부쟁이 5만4000여 송이는 여주 강천섬 대체 서식지 세 곳으로 옮겨졌다. 그러고선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날 찾은 강천섬 대체 서식지 한 곳에는 주변에서 침입해 들어온 망초, 쑥, 강아지풀과 잡초가 우거져 단양쑥부쟁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2016년부터 여주 일대의 단양쑥부쟁이를 관찰해온 경기환경운동연합은 “5년 전 첫 조사 때만 해도 1000여 송이쯤 남아있었는데 올해는 다른 풀과 잡초에 밀려 4~5송이밖에 확인이 안 됐다”고 했다.

◇“자생력 강해”… ‘제2의 천성산 도롱뇽’ 지적도

최근 몇 년간은 대체 서식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생하는 사례가 관측되고 있다. 여주보와 강천보 사이 남한강 변 일대에 소규모 단양쑥부쟁이 군락이 새롭게 발견돼 증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4대강 사업 당시 ‘단양쑥부쟁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던 과거 환경 단체의 주장이 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완희 한택식물원 연구실장은 “단양쑥부쟁이는 강물이 범람하면 휩쓸려가서 또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운다”며 “다른 풀들과의 경쟁에는 취약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발아율이 높은 자생력 강한 종”이라고 했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단양쑥부쟁이의 강한 생명력이 확인된 만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최근 환경 단체의 문제 제기에 따라 현장 방문과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단양쑥부쟁이 논란이 2003년 ‘천성산 도롱뇽 사건’과 판박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경부선 고속철도 터널이 경남 천성산 밑을 관통하면 습지가 말라붙고 도롱뇽이 사라진다며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일부 환경 단체도 시위에 가세했다. 이들은 도롱뇽을 원고로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2년 8개월간 이어진 법적 분쟁 끝에 대법원이 신청을 기각했지만, 이 과정에서 6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면서 세금이 낭비됐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환경 단체 우려와 달리 도롱뇽은 사라지긴커녕 오히려 늘었고 습지도 마르지 않았다.

심명필 인하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국가적 개발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라며 “환경 영향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극단적이고 무분별한 반대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