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사량, 풍속, 국토 면적 등 태양광·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 불리해,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안정성이 세계 42국 가운데 최하위에 해당한다는 국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가 떠 있거나 바람이 일정 속도 이상 불 때만 발전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의 약점이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미 캘리포니아대와 중국 칭화대 등 공동 연구진이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세계 태양광과 풍력 안정성의 지리적 제약’ 보고서에 담겼다. 이들 연구진이 1980~2018년까지 연구 대상 42국의 태양광·풍력 자원 데이터를 토대로, 각국의 전기 수요를 태양광·풍력으로 전량 감당한다는 조건으로 전력 안정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72.2%로 꼴찌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국토가 넓은 러시아는 전력 안정성이 90.9%로 가장 높았고 캐나다(89.8%), 호주(89.5%), 이집트(88.2%), 미국(87.7%), 중국(87.5%) 등이 뒤를 이었다.
전력 안정성은 정전 시간과 관련한 지표다. 선진국들은 연간 총 8760시간 가운데 정전 사태를 3시간 이내(99.97%)에서 막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한국은 원전을 포함한 다양한 전력 믹스를 통해 전력 안정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99.99%에 달한다. 그런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공급하면 태양광·풍력의 약점인 간헐성이 극대화되면서 전력 안정성이 70%대 초반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력 안정성을 높이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한데 이를 구축하고, 10년 정도 수명이 끝나면 설비 재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연구진은 1980~2018년까지 39년간 42국의 데이터를 활용해 각국의 전력 안정성을 분석했다. 한국에 이어 신재생 전력 안정성이 낮은 국가들은 이탈리아(75.6%), 일본(76.3%), 뉴질랜드(76.6%), 스웨덴(77.1%) 등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분석은 각국의 전력 수요를 100% 태양광·풍력으로 충당한다는 전제로 실시됐다. 입지 조건이 불리한 한국이 42국 평균치(83%)만큼 전력 안정성을 높이려면 실제 전력 수요보다 태양광·풍력 설비를 1.5배 더 늘려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에 최대한 태양광, 풍력을 촘촘히 깔아야 겨우 42국 평균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태양광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12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ESS 설비를 설치할 경우 한국의 전력 안정성이 72%에서 86%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비용 문제가 생긴다. 앞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분과 전문위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기 위한 7~8시간 단위 ESS 구축에만 최대 124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을 국제 공동 연구팀 분석에 대입하면 12시간 단위 ESS 구축에 1800조원 이상 비용이 드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전력 안정성은 86%에 그친다는 점이다. 1년 365일 중 50일가량은 정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 공동 연구팀의 분석은, 한국의 국토 여건에서는 간헐성이 약점인 태양광·풍력으로만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현재 기저 전원으로서 이용률이 70~80%에 달하는 원전은 외면하고 2050년까지 발전 설비의 최대 71%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원전을 계속 줄여 2080년 무렵엔 원전 전면 퇴출도 추진 중이다.
빈약한 태양광·풍력 자원은 실제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에너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75개 풍력발전소의 발전 효율은 평균 24%에 그쳤다. 유럽 등 선진국의 풍력 이용률(50% 안팎)의 절반 수준이다. 태양광도 우리는 작년 이용률이 14.3%에 그쳐 미 캘리포니아(24%)에 훨씬 못 미친다.
간헐성 문제도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선 더 두드러진다. 국토 면적이 큰 나라는 다양한 위치에 발전 설비를 분산 설치할 수 있어 간헐성을 줄일 수 있지만, 면적이 좁고 단일 기후대인 한국은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국에 걸쳐 비가 며칠만 내리거나 바람이 약해지면 국가 전체적으로 전력 공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인 데다 국토 조건도 좋지 않아 신재생 변동성이 취약하다”고 했다.
정부가 전력 안정성에 대한 고려 없이 지나치게 태양광 중심의 신재생 정책을 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보고서에서는 풍력 발전 비율이 태양광의 2배가량일 때 가장 안정적이라고 분석됐는데, 우리 2050 시나리오는 태양광이 풍력의 6~7배에 달하게 설계돼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정부 시나리오는 풍력 대비 태양광이 지나치게 편중돼 전력 불안정성이 극대화될 우려가 크다”며 “장마로 인해 태양광이 사흘 정도 멈출 것을 감안하면 ESS도 3배나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