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 한 해에 국내 공급한 재생에너지 총량을 올해 초 발표하면서 실제보다 1000㎿를 부풀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대 태양광발전 단지인 전남 솔라시도(98㎿)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탈(脫)원전에 이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통계를 분식(粉飾)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발단은 지난 1월 발표한 ‘전년도 에너지 공급량 잠정치’. 매년 8월 공개하던 걸 이례적으로 1월에 발표했다. “작년에만 재생에너지 4800㎿가 보급됐으며 공급 목표치(4600㎿)를 초과 달성했다”는 문구가 달렸다. 그런데 이 수치는 통계청이 공식 승인한 집계 방식을 따른 게 아니었다. 오는 11월 정식 발표하는 국가 통계와 큰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18일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이 한국전력과 한국에너지공단 등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에너지 공급량 잠정치는 에너지공단이 업무 참고차 만드는 비공식 통계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설비 확인일’을 기준으로 했다. 그런데 이는 공식 통계로 쓰는 ‘상업 운전일’과 다르다. 수개월 시차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500㎿ 이상 발전 설비를 가진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총발전량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 이를 ‘RPS(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량)’라 부른다. 태양광발전 단지를 짓고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 사업자는 RPS에 맞게 설비를 지었는지 확인 절차를 거친다. 그게 RPS 설비 확인일이다. 통상 상업 운전 이후에 이뤄진다. 이번 정부 발표처럼 RPS 설비 확인일을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계산하면, 2020년 말 상업 운전을 시작한 발전 설비가 인증서를 늦게 받아 2021년 공급량으로 잡히는 착시 오류가 발생한다.
실제 한국전력이 작년 상업 운전일 기준으로 파악한 재생에너지 신규 개통 자료(1㎿ 이상)를 통해 이번 정부 발표 숫자를 검증해보니 최소 31건이 허수로 나타났다. 대상을 1㎿ 미만 발전 설비로 확대하면 허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집계한 작년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 용량은 3761㎿. 사업자는 발전 설비 가동 전 반드시 전기안전공사에서 ‘사용 전 검사(점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사실상 작년 신규 공급량으로 볼 수 있다. 정부 발표(4800㎿)와 1000㎿ 이상 차이가 난다. 에너지공단 역시 “내부 참고용으로 산출한 비공식 통계를 근거로 갖다 쓴 건 유감”이라고 했다.
산업부가 이처럼 현 정부 들어 계속 매년 8월 발표하던 관련 통계를 1월 발표하자 논란이 많던 재생에너지 설비 성과를 의도적으로 부풀리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올해는 재생에너지 공급량 발표를 예년보다 빨리 하자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며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늘고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활용하지 않던 에너지공단 내부 자료를 갖다 쓴 점도 의문이다. 자료를 만든 에너지공단에선 “한 번도 발표에 쓰인 적 없던 내부 자료를 산업부가 왜 갑자기 공개했는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산업부는 “1월 발표 시점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RPS 기반 자료밖에 없었다”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 빠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으냐”고 했다. 해당 자료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더라도 발표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작년 재생에너지 실제 보급량이 정부 목표치를 크게 밑돌자 “무리한 재생에너지 증설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보급량은 결과적으로 2020년 보급량(4400㎿)보다 적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정부가 추진한 재생에너지 사업도 줄줄이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정부가 올 4월까지 1200㎿를 우선 공급한다고 발표했던 새만금 수상 태양광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고, 작년 말부터 가동을 목표로 했던 300㎿급 새만금 육상 태양광도 100㎿ 정도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왜곡된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여도 결국 국내 지리적 여건이나 주민 반대 등과 맞물려 수정이 불가피한 순간이 온다”며 “지금부터라도 적절한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현 정부 들어 재생에너지 보급은 꾸준히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9980㎿로 원전 설비 용량(23120㎿)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2020년엔 2만4860㎿로 원전 2만3250㎿를 추월했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태생적 한계로 전력 총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은 2016년 4.8%에서 2021년 7.6%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재생에너지 보조금 규모는 2017년 9770억원에서 2020년 2조6000억원, 3배 가까이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