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타결 내용 설명하는 화물연대 관계자들 - 화물연대 총파업 8일째인 14일 오후 경기 의왕시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제2터미널에서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 5차 교섭이 열렸다. 이날 밤늦게 화물연대 협상 담당자들이 타결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화물차주의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의 협상이 14일 타결됐다. 화물연대가 지난 7일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지 7일 만이다. 이로써 화물연대의 총파업 및 운송 방해로 가동이 중단되고 출하에 차질을 빚었던 산업 현장도 정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이날 밤 11시 보도자료를 내고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국토부는 현재 운영 중인 화물자동차의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지속 추진하고, 안전운임제의 품목 확대 등과 관련해서 (관련 기관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유가보조금 확대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고 했다.

화물차주에게 일정 금액의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을 막자는 취지에서 2020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던 안전운임제를 올해 자동 폐기(일몰)하지 않고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품목도 현행 컨테이너, 시멘트에서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봤다는 뜻이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운임제를 지금처럼 한시적으로 할지 또는 영구적으로 운영할지와 이 제도의 추가 연장 기간 등은 합의하지 않았다”며 “향후 국회의 법 개정 과정에서 이 내용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화물연대는 지금까지 안전운임제의 일몰 조항을 법에서 삭제해 이 제도를 영구 시행해야 하고, 적용 품목도 전 품목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산업계는 “가뜩이나 안전운임제 시행으로 운임이 10~20% 올랐는데, 적용 품목까지 확대하면 운임이 추가 급증해 영세 화주는 살아남지 못한다”며 반대해왔다.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가 이날 협상을 전격 재개했을 때부터 국토부 안팎에선 타결 가능성이 점쳐졌다. 지난 12일 교섭이 결렬된 지 이틀 만에 다시 마주한 양측은 이날 협상 초반에 합의에 거의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헌상 국토부 물류정책관과 김태영 화물연대 수석부위원장 등 양측 실무진은 이날 오후 8시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만나 밤 10시 40분쯤 타결을 봤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양측은 지난 12일 협상에서 ‘안전운임제를 연장하고 적용 품목 확대도 논의한다’고 이미 잠정 합의한 바 있고, 정부·여당에서도 조속한 협상 타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날 타결이 가능했다”고 했다.

지난 12일 4차 교섭이 결렬되자, 당정은 화물연대가 요구해온 안전운임제 일몰제 시한을 연장하자는 쪽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말로 다가온 화물차 안전운임제 일몰을 당장 폐지하기보다는 1~3년 정도 연장하면서 제도 성과를 좀 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에서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지만 문이 열리면 결과를 내야 한다”고 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앞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몰제 시한을 연장해서 조금 더 성과를 측정하는 부분에는 크게 이견이 없다”고 했다.

원 장관은 “화물연대가 그나마 터놓고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는 국토부임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화주 측이 “연장은 없다”며 “안전운임제를 예정대로 끝내고 새로운 논의 구조를 만들자”고 하는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국토부와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번 협상에선 ‘환적 컨테이너’ 문제도 주요 쟁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은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로 한정돼 있는데, 국토부가 수출입 컨테이너에 환적 컨테이너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면서 안전운임제 시행 1년 만에 환적 컨테이너 화물 운임이 47% 정도 급증했다. 그러자 선사들은 “환적 컨테이너가 안전운임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소송을 냈고 이겼다. 하지만 선사들은 정부가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자 여전히 환적 컨테이너에 대해 안전운임제를 적용해주고 있다. 산업계에선 “법원에서 승소 판결까지 받았는데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선사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환적 컨테이너 문제도 말끔하게 정리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협상 타결로 셧다운 위기까지 몰린 석유화학과 시멘트 업계도 한숨 돌리게 됐다. 14일 한국석유화학협회 김평중 본부장은 무역협회·경총이 공동 주관한 ‘수출입 화물 운송 정상화 촉구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내일(15일) 저녁이면 가동을 중단하는 NCC(나프타 분해 설비)가 나올 것”이라며 “NCC가 멈추기 시작하면 사실상 석유화학 산업 전체가 멈추게 된다”고 말했다.

NCC는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원료를 만드는 설비다. 화물연대가 울산·여수·대산 등 석유화학단지 진출입로를 봉쇄해 야적장이 가득 차면서 각 공장이 NCC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시멘트 업계에서는 소성로가 하나둘씩 멈추는 상황이었다. 시멘트 원재료를 가열하는 설비인 소성로는 제철소의 고로나 석유화학공장의 NCC처럼 24시간 쉼 없이 가동해야 하는 핵심 설비다. 김영민 한국시멘트협회 이사는 “전국의 소성로 45기 중 2기가 지난주 이미 가동을 중단했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강원 강릉의 한라시멘트, 충북 제천의 아세아시멘트가 각각 1기씩 가동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