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열대야(熱帶夜)가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상관측 사상 최초로 27일 새벽 서울에서 ‘6월 열대야’가 발생했다. 같은 날 수원·대전·광주 등에서도 사상 첫 6월 열대야가 나타났다. 통상 열대야는 폭염이 이어지는 7~8월 집중된다. 작년의 경우 6월에 열대야가 발생한 지역이 한 곳도 없었다. 기상청은 “올해 6월 열대야 급증엔 ‘북태평양 고기압’과 ‘두꺼운 구름대’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고온다습한 공기가 지속해서 유입되면서 당분간 한밤중에도 푹푹 찌는 날이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7일 오전 4시 54분 서울 일 최저기온이 25.4도를 기록해 올해 첫 열대야(오후 6시 1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가 발생했다. 서울 지역에서 전날 세운 ‘6월 일 최저기온’ 기록(24.8도)을 하루 만에 경신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날 역대 가장 높은 ‘6월 일 최저기온’ 기록을 남긴 수원·인천·강릉·대전·광주 등도 이날 밤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더 올랐다. 원주(25.7도), 속초(25.4도), 보령(26.1도), 부여(25.4도)의 일 최저기온도 역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예년에도 일부 지역에서 6월 열대야가 발생한 적은 있었지만, 올해처럼 우리나라 전역에서 열대야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례적이다. 작년과 2019년엔 전국에서 6월 열대야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고, 2018년과 2020년에도 전국을 통틀어 한두번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올해는 벌써 전국 25개 지역(기상관측소 기준)에서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초여름부터 장마와 이른 폭염·열대야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밤낮 없는 ‘찜통 더위’의 원인은 덥고 습한 바람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 남동쪽 해상에 위치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덥고 습한 남풍(南風)이 마치 더운 입김을 불어넣듯 계속 유입되고 있다. 반면 계절적 요인으로 시베리아 쪽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은 내려오지 않고 있다. 26일 발생한 열대야는 이런 남풍의 영향이 컸다.
27일 새벽이 전날 새벽보다 더 더웠던 것은 남풍의 유입에 우리나라 상공에 위치한 두꺼운 구름대가 ‘이불 효과’까지 냈기 때문이다. 이날 구름대가 두껍게 형성돼 구름대와 지표면 사이에 열기가 갇히는 효과가 났다. 밤에도 지표면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밤사이 기온도 내려가지 못했다. 27일 서울의 경우 낮 최고기온은 28.1도, 밤 최저기온은 25.4도로 일교차가 2.7도에 불과했다.
이번 ‘6월 열대야’는 통상 열대야 원인으로 지목되는 도심의 열섬 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열섬 현상은 구름 없이 맑은 날 햇빛이 지표면을 뜨겁게 달굴 때 발생하는데 이번 열대야는 비구름의 영향이 오히려 더 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지구온난화 여파라는 분석도 현재로선 무리가 있다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결국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과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구름대의 향방이 열대야 장기화를 결정할 전망이다. 열대야 여부가 ‘25도’라는 수치적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어서 공식 집계상으론 열대야가 아니라고 예보돼도 당분간은 열대야에 근접한 무더위에 계속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28일 서울의 최저기온은 24도로 예보됐지만 전국에 비 예보도 있어 구름대가 계속 이불 역할을 하면 열대야는 또 발생할 수 있다.
28일은 전국이 대체로 흐린 가운데 곳곳에 비와 소나기가 예고됐다. 27~28일 예상 강수량은 중부지방과 강원내륙·산지 등에서 50~150㎜, 충청·전남·경북권 10~60㎜, 강원 동해안·제주도 북부 해안 5~30㎜ 등이다. 전국 아침 최저기온은 22~27도, 낮 최고기온은 25~33도로 예보됐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온열질환 등 보건과 농업, 축산업 등의 피해가 없도록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