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산을 깎아 설치한 ‘산지(山地) 태양광’ 중 55%가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많은 비가 내려도 토사가 쓸려 내려가는 것을 방지해주던 나무를 잘라내고 땅속에 인공 구조물을 박아 설치하는 산지 태양광 특성상 산사태 및 토사유출에 대한 위험성은 줄곧 제기돼왔다. 문 정부 들어 무분별하게 늘어난 산지 태양광의 구체적 위험이 수치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 장수군 천천면 반월마을 일대의 산지를 파헤치고 설치된 태양광 시설물. 최근 5년간 산지(山地)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307만여그루의 나무가 베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근 기자

12일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산림청과 한국환경연구원(KEI)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1월 이후 허가된 산지 태양광 가운데 KEI가 산사태 방지 등 안전차원에서 제시한 ‘평균 경사도 10도 미만, 최대 경사도 15도 미만’ 조건에 미달하는 곳은 3684곳 중 2057곳에 달했다. 55.8%가 위험하단 뜻이다.

KEI는 2018년 8월 ‘육상 태양광 발전사업 환경성 검토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를 통해 이같은 기준을 마련했다. KEI는 이 보고서에서 “산사태 및 토사 유출 방지를 위해 평균 경사도 10도 이상이며 최고 경사가 15도인 입지를 ‘회피 지역’으로 선정하라”고 정부 측에 권고했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위험하니 태양광을 짓지 못하도록 정부가 조처하라는 뜻이다.

KEI가 이런 연구를 벌인 것은 과거 만들어진 산지관리법상 산지 태양광 허가 시 경사도 기준이 ‘평균 25도 이하’로 지나치게 느슨한데다, 문 정부 들어 논밭에 이어 산까지 태양광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보다 정교한 안전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지 태양광은 주로 평지에 설치되는 논밭 태양광과 달리 벌목으로 인한 지반 약화로 폭우나 집중호우에 토사가 쓸려 내려가 산사태를 유발할 위험이 컸다.

충북 제천시 대랑동에 설치된 산지 태양광 시설 일부가 파손돼 패널들이 산 아래로 밀려나와 있다. /조선DB

KEI 관계자는 “실제 설치 운영 중인 산지 태양광을 10년 넘게 실증조사 해온 결과, 평균 경사도가 10도를 넘어가면 토지 유실 및 지형 변화가 심했다”며 “산사태 위험과도 크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국민 안전 차원에서 연구용역 보고서에 경사도 관련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KEI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보다 느슨한 ‘경사도 평균 15도 이하’로 2018년 11월 시행령을 개정했다. KEI가 ‘회피지역’으로 삼으라고 했던 곳이 ‘사업지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산림청이 2018년 11월 이후 허가를 내준 산지 태양광은 총 3879건이었다. 이중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산림청에 경사도를 의무적으로 알려야 하는 산지 면적 660㎡ 이상 산지 태양광은 3684건이었다.

정부가 그나마 기존 ‘평균 25도 이하’이던 기준을 ‘평균 15도 이하’로 바꾼 것도 효과는 없었다. 시행령 개정 이전 일단 신청부터 해놓으면 법 개정 이후에도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꼼수’로 강화된 법 적용을 받지 않은 채 시행령 개정 이후 산림청이 허가해준 ‘경사도 15도 이상’ 산지 태양광은 총 884건이었다. 연도별로는 ▲2018년 351건 ▲2019년 470건 ▲2020년 53건 ▲2021년 10건 등이었다. 지역별로는 ▲전남 344건 ▲경북 152건 ▲경남 101건 ▲전북 92건 ▲강원 75건 ▲충남 58건 ▲충북 32건 ▲경기 28건 ▲세종 2건 순이었다.

기준 초과 범위를 살펴보면 ‘25도 이하 20도 초과’가 240건, ‘20도 이하 15도 초과’가 644건이었다. 경북 영양 한 산지 태양광이 경사도 25도로 가장 가팔랐고, 경기 연천 24.6도, 전남 장흥 24.5도, 경남 의령 24.1도 등 산사태나 토사 유출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산지 태양광이 운영 중이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산 비탈면에 시한폭탄을 깔아놓은 셈”이라고 했다.

산림청은 “법 개정 이전에 태양광 사업을 신청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

안 의원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안전기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지난 5년간 무분별한 태양광 용량 늘리기가 자행됐다”며 “산림 보호와 국민 안전 측면에서 산지 태양광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