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참사 경위를 밝힐 핵심 열쇠인 블랙박스 분석이 본격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3일 브리핑을 열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음성 기록 장치(CVR)에서 음성 파일을 추출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현재 녹취록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음성 기록 장치는 비행기에 설치된 두 가지 블랙박스 중 하나다. 조종사끼리 나눈 대화 등 조종석 안 각종 소리들이 녹음돼 있어 사고 당시 기내 상황을 알 수 있다. 어떤 상황 때문에 조종사들이 동체 착륙이라는 최후 수단을 썼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핵심 단서다.
또 다른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는 사고 충격으로 손상돼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로 보내 분석할 방침이다. 시간대별 항공기의 위치와 속도, 각종 장치의 상태가 데이터 형태로 담겨 있다. 국토부는 “사조위 조사관 2명이 오는 6일 미국으로 FDR을 가져갈 예정”이라고 했다.
사고 조사는 이 두 가지 블랙박스에 저장된 음성·자료와 현장의 증거 등을 조합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사고기가 정확히 어떤 상태에서 복행(復行·Go-around)했는지다. 복행이란 항공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고도와 속도를 높여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당시 사고기 조종사들은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긴급 신호인 “메이데이”와 함께 복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이유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를 들었다. 사고기가 ADS-B(항공기 위치 탐지 시스템)를 통해 내보낸 고도·속도 데이터 등을 보면 사고 약 5분 전인 지난달 29일 오전 8시 57분 30초쯤부터 기체 방향이 흔들린다. 조류 경보 즈음 조류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
활주로 접근 고도가 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ADS-B에 따르면 제주항공 여객기는 활주로를 약 9km 남긴 지점에서의 고도가 419m(1375피트)였다. 활주로를 이 정도 남겨놓고 있을 때의 가장 이상적인 접근 높이인 약 518m(1700피트)에 다소 못 미쳤다. 엔진, 랜딩기어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은 1차 착륙 시도 중간에도 활주로 접근 고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ADS-B 데이터는 참고용일 뿐, 블랙박스 데이터만큼 신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엔진과 착륙 바퀴인 ‘랜딩기어’ 등을 작동시키는 각종 유압 시스템이 사고 당시 어떤 상태였고, 왜 문제가 생겼는지도 풀어야 할 주요 숙제다. 항공전문가들은 엔진 두 개에 모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엔진이 하나라도 작동했다면 메이데이 선언 후 활주로 방향까지 바꿔가며 불과 3분 만에 동체 착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직 정비사들 역시 사고 영상에서 해당 항공기의 외부 등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았다며 전원이 나간 상태라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정확한 사고 경위는 사조위가 블랙박스를 분석해봐야만 알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