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설 연휴에도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정책을 시행한다. 이달 27일부터 30일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차량은 통행료를 면제받는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민 부담 경감 등을 내세우며 관련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후, 유료도로법이 개정된 게 올해까지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통행료 면제가 실제 국민 부담 경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짓고 운영하는 ‘민자 고속도로’는 통행료 면제 전액을 정부가 세금으로 민간 업체에 보전해 줘야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재정 고속도로’ 면제액은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빚으로 떠안게 된다. 평소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향후 세금 등의 형태로 통행료 면제를 나눠 갚아줘야 한다는 뜻이다.

17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의 명절 통행료 감면액은 누적 5000억원을 넘었다. 지난 2019년엔 면제 금액이 1238억원(재정도로+민자도로)이었지만 2023년 1554억원, 지난해엔 1495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추석부터 2022년 설까지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면제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매해 1500억원 안팎의 통행료가 감면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이진영

문재인 정부 전에도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명절 고속도로엔 차량이 많아 법정 최저 속도에도 이르지 못하는데, 통행료를 모두 걷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면제 정책을 시행해도 결국 세금으로 손해를 메울 수밖에 없는 현실 등이 고려돼, 법 개정에 이르진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과 2016년에는 광복절 전날과 어린이날 다음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통행료를 일회성으로 면제한 적이 있다. 당시 명절은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를 감면했을 뿐 아니라, 2018년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 관리 대책’을 내놓는 등 통행료를 대폭 낮추는 정책도 시행됐다. 9400원이던 천안~논산 구간이 4900원이 된 것을 비롯해 1만500원이던 대구~부산은 5000원으로, 서울~춘천은 5700원에서 4100원으로 통행료가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통행료 할인 역시 국가가 세금을 통해 민간 업체에 보상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모든 고속도로 통행료는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통행료를 올리지 않을 경우 정부가 대신 돈을 물어야 하는 구조다. 실제 국내 16개 주요 민자 고속도로에 들어가는 정부 지원금이 2023년 930억원에서 올해 1885억원으로 2배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할인·감면 정책 때문이다. 더욱이 빚이 38조원에 이르는 한국도로공사에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에 따른 채무를 계속 떠넘기는 것도 공공 부문 부채를 줄이겠다는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는 데다, 대중교통이나 국도를 이용하는 이들까지 고속도로로 몰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지난 2019년 명절 기간 재정도로의 전체 차량 통행량은 3097만대였지만 지난해엔 4406만대로 늘었다. 일평균으로 계산해도 2019년 설 연휴엔 439만대가 이동했지만, 지난해 설 연휴엔 544만대가 고속도로에 나왔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통행료 감면의 소비 진작, 서민 부담 경감 등 효과는 미미하다”며 “일괄적으로 면제할 게 아니라 예컨대 경차 등에만 받지 않는 식으로 정책을 손볼 때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