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경남 산청 등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일단 진화됐지만, 산불이 남긴 후유증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불이 숲과 흙, 동식물을 모두 태워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림 전문가들은 산불이 발생하기 전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가려면 최소한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미나 메뚜기 등 곤충은 13년, 두더지나 삵 같은 야생동물은 35년 이상 흘러야 산불 이전의 개체 수를 회복할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달 31일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영남 지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산림 등 4만8000ha가 불탔다. 역대 산불 중 가장 큰 규모다. 울창한 소나무 숲들이 전소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불길이 지나간 지역은 소나무는 물론이고 신갈나무, 멧돼지, 꽃무지 등이 전부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0년 동해안 산불이 발생한 이후 생태계의 변화를 추적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당시엔 산불로 여의도 82배에 달하는 2만3794ha가 불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해안 산은 산불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 모습을 거의 회복하지 못했다. 생존력이 강했던 건 곤충이었다. 개미는 13년이 지나면 원래 수만큼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산불이 나면 지표면에 있는 생물은 죽지만 10㎝ 이상 깊은 땅속에 있는 생물은 대부분 살아남는다”며 “대표적인 생물이 곤충, 그중에서도 개미나 딱정벌레가 생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개미는 죽은 나무 둥치나 땅속에 집을 짓고 먹이사슬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토대 역할을 한다. 개미가 증식하면 이를 잡아먹는 거미, 딱정벌레류 등이 같이 늘어난다.
그다음에는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란다. 불탄 숲은 시간이 지나면 풀이 다시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햇볕을 가리는 나무가 없는 데다 재가 비료 역할을 해 풀이 더 잘 자랄 수 있다”고 했다. 폐허를 뚫고 먼저 자라는 식물들을 ‘개척종’이라고 부르는데, 조릿대나 강아지풀 등이 있다.
산림과학원은 나무의 밀도가 높아져 산불 이전의 80% 모습을 회복하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봤다. 80%면 얼추 숲의 모습을 띠게 된다. 100% 회복하는 데는 30년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라는 속도는 수종마다 다르다. 소나무는 원래 키만큼 자라는 데 30년 정도가 걸린다.
야생동물은 회복 속도가 가장 늦었다. 35년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이 복원되고 먹이가 충분히 생겨야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나무 열매와 풀, 곤충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고라니와 멸종 위기종인 삵도 넓은 풀숲과 나무 은신처, 물웅덩이가 있어야 한다. 식물들이 온전히 자라나야 집이 생기는 것이다.
불탄 토양이 산불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산림과학원은 분석했다. 토양은 낙엽 등이 썩으며 영양분을 공급하고 미생물이 활동해야 살아난다. 나무가 자라 잎을 떨어뜨리고 미생물이 번식해 자리를 잡기까지 100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다. 산림과학원 측은 “이 결과는 인공 조림 등 사람의 인위적인 개입 없이 산림 생태계가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불의 영향은 산림뿐 아니라 인근 강과 바다에도 미친다. 여름철 장마가 시작돼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재가 빗물을 타고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재 속에 있는 질소와 인 성분은 햇볕을 쬐면 강에서는 녹조를, 바다에서는 적조를 일으킨다. 녹조와 적조는 물고기 폐사의 원인이 된다. 경북 산불의 경우 낙동강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이번 산불은 동해안의 영덕까지 번졌는데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볼락, 가자미 등이 특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도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이어진 산불로 숲 1860만ha가 불탔는데, 이후 인근 바다의 산호와 어류가 집단 폐사했다. 산불로 발생한 재가 바다로 흘러가 생태계를 망가뜨린 것이었다.
산불로 민둥산이 된 곳은 보통 ‘자연 복원’과 ‘인공 조림’을 섞어 복원 작업을 한다. 인공 조림 방식은 숲을 빨리 울창하게 만들 수 있지만 생태계가 교란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불탄 산을 그대로 두는 자연 복원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