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남 무안 제주항공 참사 사고기가 콘크리트 둔덕이 있는 19번 활주로(북쪽에서 남쪽)로 착륙한 건 관제탑의 제안에 따른 조치로 7일 확인됐다. 당초 사고기 조종사는 원래 콘크리트 둔덕이 없는 1번 방향 활주로로 착륙하겠다고 세 차례 전했으나, 관제탑에서 착륙 직전 19번 방향을 안내했다.

그래픽=김현국

이날 본지가 확보한 무안공항 관제탑과 사고 여객기 간 교신 내용에는 블랙박스가 기록하지 못한 사고 직전의 4분 7초간 기록이 담겨 있다. 교신 기록에 따르면 조종사는 사고기 충돌 직전인 8시 59분 34초, 9시 00분 21초 등에 1번 활주로로 착륙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충돌 1분여 전인 9시 1분 07초 관제사가 ‘19번 방향으로 착륙하겠느냐’고 했고, 조종사가 이를 받아들이며 착륙 방향이 변경됐다.

전문가들은 당시 관제탑과 조종사의 선택이 적절했는지 엄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고 교신 기록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 사고 조사 보고서가 나오려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데, 조사 주체인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교신의 일부만 공개한 탓에 불필요한 억측만 불러온다는 것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에 관한 법률은 교신 기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공개 여부는 조사위의 재량 영역이다.

◇조종사 “예정된 활주로로” 관제탑 “다른 방향으로”

“레프트 턴으로 착륙하겠다” “불가능” “19번 활주로로 착륙하시겠느냐”

7일 본지가 입수한 무안 참사 항공기와 관제탑 간 교신 기록에 따르면, 사고 항공기와 관제탑은 조류 충돌이 발생한 후 활주로 착륙 방향에 대해 수차례 교신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고 항공기는 조류 충돌 후 곧바로 고도를 높이는 복행을 시도했고, 관제탑은 고도를 5000피트까지 올리라고 지시했다. 항공기 조종사는 30여 초 뒤인 8시 59분 34초 ‘레프트 턴(왼쪽으로 선회) 해서 곧바로 착륙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여기에서의 착륙은 당초 예정된 1번 활주로로의 착륙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종사는 다시 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번복했고, 15초 뒤에 ‘언에이블(unable·불가능)’이라고 관제탑에 전했다. 이후 9시 0분 21초엔 ‘라이트 턴(오른쪽으로 선회) 해서 런웨이(활주로) 방향 01로 부탁’한다고 밝혔다.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예정된 1번 활주로로 착륙하겠으니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관제탑은 ‘오른쪽으로 도는 게 맞냐’고 재차 물었고, 조종사는 ‘맞다’고 확인했다.

그래픽=김현국

갑자기 착륙 방향이 바뀐 건 9시 1분 7초쯤이다. 관제탑은 1번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하려던 항공기에 ‘19번 방향으로 랜딩하시겠느냐’고 제안했다. 항공기는 2초 뒤 ‘네, 19방향 스탠바이(준비)’라고 답했고, 관제탑은 9시 1분 11초 ‘활주로 19, 바람 없는 상태, 착륙해도 된다’고 허가했다. 결국 항공기는 이후 19번 활주로로 동체착륙했다가 9시 2분 57초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했다.

일부 전문가는 관제탑이 착륙 방향을 바꾼 이유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1번 활주로 끝엔 없었던 콘크리트 둔덕 탓에 19번 활주로로의 착륙은 최악의 선택이 됐기 때문이다. 김인규 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관제탑이 방향을 바꾼 건 당시 항공기가 고도를 높이지 못하는 등 제대로 복행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충돌 1~2분여 전 사고 항공기는 선회하며 37도까지 기울어졌는데, 통상의 기울기(25도)보다 10도 이상 각도가 컸다.

조종사와 관제탑이 선택했던 복행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사고기 제조사인 보잉사 매뉴얼에는 착륙 과정에서 새 떼를 만나도 그대로 관통하는 것이 좋고, 엔진 출력을 낮게 유지하라고 명시돼 있다. 착륙은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므로 엔진이 천천히 돌고 있어서, 새가 충돌한다 해도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으니 그 상태를 유지하며 착륙하라는 취지다.

사고 항공기는 본래 착륙을 준비하며 875피트(267m)까지 낮췄던 고도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엔진 고장 등으로 고도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고, 관제탑이 제시한 5000피트가 아닌 1075피트(327미터)까지 올라가는 데 그쳤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고장이 감지되고도 고도를 높이는 복행을 시도했다는 건 당시 엔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다는 뜻”이라며 “조류 충돌이 발생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엔진 출력을 높여 완전히 고장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