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火魔)가 덮치며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소실된 주왕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와 관련, 국립공원에 난 불을 국립공원 스스로 끌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 예방도, 진화도 할 수 없다보니 국립공원 영역 안으로 산불이 들어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9일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과 국립공원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발생한 경북 청송 산불로 주왕산국립공원 전체 면적(1만610ha)의 약 3분의 1인 3260ha(헥타르)가 불탔다. 여의도 11배 면적이 사라진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7일부터 이번 산불로 주왕산에 발생한 생태 피해를 조사 중이다. 첫날 조사에선 주왕산국립공원 내 유일한 마을인 너구마을에서 불에 탄 노루 사체 1개체가 발견됐다. 산 깊이 조사가 진행될수록 주왕산의 ‘깃대종’인 솔부엉이와 멸종위기종인 하늘다람쥐, 담비, 수달 등에 대한 피해도 확인될 수 있다. 깃대종이란 해당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 이후 동·식물 생태가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3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주왕산국립공원의 산불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는 국립공원 스스로 산불에 대한 대비·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 꼽힌다. 현행 국립공원공단법과 산림재난방지법에는 국립공원공단과 각 소공원이 ‘산림재난방지기관’으로 지정돼있지 않다. 이에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산불이 나면 주왕산이 속한 경북도와 산림청의 매뉴얼에 따라 진압을 하게 된다. 산불이 나도 정작 국립공원에선 선제적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번 주왕산국립공원 화재 이전까지 역대 국립공원 산불로는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재작년 3월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당시에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128ha가 불탔는데 지리산국립공원에선 산불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 헬기 지원 정도밖에 없어서 해당법을 손봐야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산불이 진압된 이후 법 개정이 지지부진해졌다.
공단에 따르면, 2015년부터 작년까지 10년간 국립공원 내 산불은 총 79건이 발생했고, 피해 규모는 161.12ha로 집계됐다. 2021년 1.78ha에서 2022년 10.42ha, 재작년 131.78ha로 늘었다가 작년에는 0.09ha로 줄었다. 건조도가 높아 산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있는 올해에는 이번 주왕산국립공원 피해 이외에도 연말까지 피해가 더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5월 중순 산불예방기간이 끝나고 국립공원에 입산객이 늘기 시작하면 실화로 인한 화재가 더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국립공원이 국립공원에 난 불을 끌 수 있도록 관련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공원공단법 개정을 통해 공단 사업에 산불 등 재난 및 관리 지원을 추가하고, 산림재난방지법을 손봐 국립공원을 산림재난방지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 전문 인력을 국립공원 안에서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임이자 의원은 “국립공원공단이 산림재난방지기관으로 지정되면 각 국립공원에서 상황에 맞는 산불예방진화대 및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등을 운영할 수 있다”며 “온난화 여파로 봄철 영남 지역 건조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고 산불 피해도 반복될 수 있는 만큼 관련법 개정을 서두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