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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너졌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약에서 세운 ‘1.5도 마지노선’이 지난해 처음으로 깨졌다. 기상이변과 극단적 홍수·가뭄, 계절 패턴의 붕괴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미래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 밑으로 유지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불과 9년 만에 ‘상승 폭 1.5도’라는 제한선이 깨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발표한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서 작년 한 해 전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175년간 지구 평균기온을 관측한 이래 작년 기온이 최고치였다.

보고서는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의 뚜렷한 징후들이 일제히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의 작년 농도는 지난 80만년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다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지칭하는 ‘해양 열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바닷물이 더워질수록 해빙(海氷) 면적이 줄고, 이는 해수면 상승을 견인한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치 기록을 매년 새로 썼고, 남극 해빙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경신해왔다. 해수면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졌다.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2.1㎜ 상승)과 비교해 2배 이상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래픽=이진영

바다는 비열이 높아서 온도가 천천히 올라가고 천천히 내려간다. 탄소 배출을 줄여 바닷물 온도 상승 속도를 억제한다고 해도, 이미 올라간 바닷물 온도를 떨어뜨리는 데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바다는 비구름이 형성될 때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해 강수량을 늘리게 된다. 2022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시간당 100㎜ 이상 극한 호우는 더운 바다가 만들어낸 기상이변의 단면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난항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이 지난 1월 파리협약 탈퇴를 재차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도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 정책을 폈다. 9월 각국이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를 앞둔 가운데, 미국의 탈퇴로 탄소 중립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리협약 같은 국제사회의 약속은 강제성이 없기에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미국과 같은 사례가 또 나올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는 인류의 명운이 걸린 사안인 만큼 각국이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 파리협약이 헐거운 약속일 수 있으나 기후 위기를 타개할 ‘최후의 보루’인 점은 명확하다.

1.5도가 깨졌다고 해서 기온 상승 억제 목표가 완전히 틀어진 것은 아니다.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장기적인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라며 “작년에 나타난 현상은 지구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협약에서 세운 목표는 장기적 추세를 염두에 둔 것이기에 작년 한 해만 보고 목표를 잃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장기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며, 올해 예정된 국가 기후 계획을 통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탄소 중립을 향한 인류의 친환경적 ‘실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