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 발표 소식을 듣고 주한 미군 지속 주둔을 요구하기 위해 방미 길에 올랐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창문’이라 할 만큼 자연 풍광이 빼어난 요세미티를 둘러봤다. 박 대통령은 국립공원의 장엄함에 크게 매료됐다. 특히 많은 외국인이 탐방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립공원이 월남전 종전으로 끊기게 될 외화벌이 대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귀국 직후 설악산으로 내려가 국립공원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설악산은 지형 지질과 경관미에서 요세미티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건설부는 설악산 국립공원 조성에 착수했고, 박 대통령은 수시로 현장을 찾아 요세미티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떠올리며 각종 공원 시설의 배치를 직접 지휘했다. 어느 날 건설부 장관이 대규모 교통·운수 시설 설치 계획을 보고하자, 그는 “내가 요세미티에 가 보니 국립공원을 제대로 만들려면 부대 시설과 교통편도 중요하겠지만, 공원 일대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존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 지적했다. 이후 건설부는 국립공원을 새로 조성할 때마다 ‘보전을 원칙으로 하되 개발은 최소화’한다는 철학을 갖게 됐다.
1978년 11월 진갑을 맞은 박 대통령은 두 딸과 다시 설악산을 찾았다. 일행은 비선대 가는 길에 자연보호 활동을 하면서, 이름 모를 자유 용사의 비에 참배도 하고 신흥사 일주문 앞에서는 기념사진도 찍었다. 한 파출소에 들러서는 경찰관을 격려하면서 설악산 관리에 여념 없는 경찰, 소방, 국립공원 공무원들의 숙소 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 1동 건립을 약속했다. 그는 기자들과 대화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큰 예산을 들여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목적은 단순히 외화를 더 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국민이 국내 관광을 통해 우리나라 산천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은 물론이요, 또한 다음 세대에게는 그들의 선배들이 조국의 대자연을 가꾸기 위해서 이렇게도 애썼구나 하는 감동을 주기 위해서다.” 국립공원 관리 철학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국립공원 23곳 방문객이 4000만명을 회복했다. 주말이면 많은 국민이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국립공원을 방문한다. 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악산 대청봉에서 다도해 흑산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산간 오지에서 국립공원 레인저들이 365일 근무 중이다. 정부 관점에서는 예산의 0.06%만 쓰고도 많은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국립공원공단이야말로 효자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전쟁으로 국토가 피폐해지고 절망적이던 시절 박 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미래를 내다보며 국립공원 가꾸기에 상당한 예산과 열정을 퍼부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가난에서 벗어났고 강산은 푸름을 되찾았다. 국민소득 3만6000달러, 경제 규모 세계 10위의 찬사와 풍요를 누리는 이때, 차기 대통령은 오로지 득표를 위해 국립공원을 개발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
정치 진영을 떠나 후대까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립공원 시스템을 선진화할 수 있는 미래 비전과 환경 철학을 갖춘 지도자가 선출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