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도굴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는 흙만 찍어 먹어봐도 땅속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낸다. 9층 석탑에서 훔쳐온 불상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고미술 상가를 누빌 만큼 배짱도 두둑하다. 어디서 났느냐는 질문엔 “고향 물어보는 건 실례인데”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 ‘도굴’은 강동구를 중심으로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삽질의 달인, 엘리트 큐레이터가 모여 문화재 도굴을 계획하는 이야기다. 익숙한 케이퍼 무비(강탈이나 절도를 보여주는 영화)의 공식에 석탑·불상 같은 문화재를 얹어 참신함을 더했다. 이들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땅굴을 파 내려가 선릉 안의 문화재를 훔치겠다는 발칙한 계획을 세운다.

‘파수꾼’ ‘사냥의 시간’ 등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들을 맡아온 배우 이제훈의 능글맞은 얼굴이 새롭다. 이제훈 자신도 “영화를 찍으며 말이 많아졌다”고 할 정도로 유쾌한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자칭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라 불리는 ‘존스 박사’를 맡은 조우진도 쉴 새 없이 조잘대며 잔망스러운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전설의 삽질 장인 삽다리 역을 맡은 임원희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벤치 마킹했다”는 단발머리로 변신해 등장만으로도 웃음이 터진다.

5t 트럭 100대 분량 흙을 동원해 완성한 대규모 땅굴 세트도 볼거리다. 영화에 등장하는 금동 불상이나 고분벽화도 특수 제작해 촬영 현장에서도 보물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뻔한 악역 캐릭터와 예측 가능한 전개는 아쉽다. 맛깔스러운 대사, 능청스러운 연기,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갖췄는데도 킬링타임용 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쫄깃한 긴장감이나 큰 웃음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신뢰받는 배우 정동환의 1인극. 괴테 소설 속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 ‘이반’ ‘알료샤’를 혼자 연기한다.

◇공연 |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신이 되고자 최고의 지식을 섭렵했으나 한계를 절감하고 환멸로 가득한 지식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 버린 파우스트. 그에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쓴 편지가 도착한다. “카라마조프가의 차남 이반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문학 작품 ‘대심문관’을 읽어보시죠. 당신이 좋아하는 연극으로 해봐도 좋고!” 파우스트의 연극이 시작된다.

신뢰받는 배우 정동환의 1인극. 괴테 소설 속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 ‘이반’ ‘알료샤’를 혼자 연기한다. 몸짓과 말투, 조명과 무대 변화를 무기로, 신화 속 고대 생물이라도 된 듯 이야기와 캐릭터들 사이를 매끈하게 꿈틀거리며 유영한다. 매일 공연이 마지막인 듯 자신을 다 던지는 배우의 모습이 아름답다. 8일까지 서울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전시 | 장욱진 30주기展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3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강가의 아틀리에’가 경기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12월 13일까지 열린다. 생전의 화가가 12년간 머물렀던 덕소(경기도)라는 공간에 주목했다. 전시 제목은 화가가 산업화된 도시를 떠나 화업(畵業)을 전개했던 ‘덕소’를 가리키는 동시에 ‘자연’ 자체를 의미한다.

강가 언덕에 마련한 작은 작업실에서 장욱진은 사람과 동물과 풍경이 정겹게 어울리는 편견 없는 공동체를 그려냈다. ‘가족’(1954) ‘어미소’(1973) ‘산경’(1988) 등 대표작 36점이 온기를 건넨다. 김희원·박희자·빈우혁 등 후배 작가 3인이 영상·설치·회화로 장욱진의 그림 세계를 재해석한 작품도 준비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곳에서 만난 암컷 문어 한 마리와의 교감을 다룬 작품이다.

◇넷플릭스 | 나의 문어 선생님

모든 것에 지쳐버린 중년의 다큐멘터리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 어린 시절 바다에서 자유롭게 잠수할 때 느꼈던 기쁨을 떠올리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웨스턴 케이퍼 주 해안으로 떠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곳에서 만난 암컷 문어 한 마리와의 교감을 다룬 작품이다. 다시마 숲을 헤엄치다가 우연히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문어를 만난 그는 매일 문어를 관찰하러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크레이그를 무서워하던 문어도 차츰 경계를 풀며 그에게 다가가고, 문어와의 우정을 통해 그는 이른바 ‘중년의 위기’를 치유해 나간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함께 느낄 특권을 선물하는 다큐멘터리다.


◇앨범 | 아리아나 그란데

팝요정 아리아나 그란데가 여섯 번째 정규앨범 ‘포지션스’로 돌아왔다.

총 14곡이 든 이번 앨범은 남자친구인 부동산 중개업자 돌턴 고메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들린다. 추운 겨울밤 듣기 좋은 잔잔한 알앤비 곡들이다. 타이틀곡 ‘포지션스’에서는 “너는 하늘이 내게 보내준 선물”이라며 “너를 위해선 난 못할 게 없지”라고 말한다. 수록곡 ‘POV’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곡 같은 느낌이다. “아무도 너처럼 날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기에” “난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 등의 가사들이 달콤하다. 위캔드와 함께 부른 ‘오프더테이블’에서는 두 사람의 음색이 잘 어울린다. 야한 가사가 인상적인 ‘내스티’에서 그녀는 더이상 요정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