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사진을 찍는다. 아내 그레이스가 그루폰이란 인터넷 사이트에서 20달러짜리 촬영 쿠폰을 매번 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은 돈을 내고 스튜디오에 가서 찍은 사진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더 크게 인쇄한 사진을 집 곳곳에 걸어 놓는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이유로 그루폰을 좋아한다. 몇 년 전, 그루폰 풋옵션(Put Option)을 매입해서 며칠 만에 수천 달러를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루폰의 주식이 너무 비싼 것 같아, 주가가 내려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풋옵션을 샀다. 실제로 며칠 만에 주가가 떨어졌다. 너무 기분이 좋았던 나는 뉴욕의 유명한 스테이크 집에 팀 동료 아홉 명을 데리고 가서 회식을 시켜주었다.
“여보, 미안. 내가 말 안 했지?”
내가 최근 아내에게 오래된 비밀까지 밝히면서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있다. 증권 분야에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아주 낯선 투자 테크닉이 많다. 우리 팀에 스테이크를 선사했던 풋옵션은 그루폰사 주식을 마감일에 정해진 가격, 예를 들어 주당 5달러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소유자에게 부여하는 계약이다. 하지만 주가가 마감일 전까지 5달러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풋옵션은 소멸한다.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옵션을 사용해서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2주 전 금요일 오후, 내 컴퓨터 스크린에 의미심장한 뉴스 헤드라인이 지나갔다. 두 투자 은행이 대규모 주식 매각을 단행했다는 뉴스였다. 그 회사들은 내가 책임지고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주말에는 회사 컴퓨터도, 블룸버그 앱도 꺼놓는 나는 월요일이 돼서야 사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마음 아픈 일이었다. 여기 개입된 투자자가 한국계 미국인 빌 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산 운용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 다 아는 빌 황은 베테랑 펀드매니저였다. 그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경영했던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는 한때 50억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헤지펀드였다. 불미스러운 일로 고객 자산 운용 일에서 물러나게 된 그는 자신의 가족 자산만을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를 열었고, 이름을 아케고스(선구자)라고 지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지엔엠 글로벌 문화재단(Grace and Mercy Foundation)’을 설립했다. 나도 이 파운데이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실망스럽게도 빌 황을 만나지는 못했다.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 다음으로 내가 만나보고 싶었던 투자자였기에 실망이 적지 않았다.
그랬던 빌 황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기 위해 뉴스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전하는 보도 내용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어난 일에 비해 설명이 너무 단순했고, 빌 황 사태에 엮인 은행들의 피해 규모에 초점을 두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일로 돈을 잃은 고객은 한 명도 없다. 빌 황이나 대규모 월가 은행이나 그들의 전략이 어떤 위험을 갖는지 잘 아는 전문 투자자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빌 황의 가족과 직원들, 그리고 그의 자선 사업이 도울 수 있었던 많은 이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빌 황과 은행들은 어떤 전략으로 투자한 걸까? 그들은 총수익 스와프 거래(Total Return Swap, TRS)를 사용했다. 이 투자 방법은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서명자들이 각자 동의한 규칙에 따라 돈을 교환하는 계약이다. 예를 들어 나의 친구 K가 ABC 회사 주식을 사고 싶은데, 그가 이 회사의 라이벌인 XYZ 회사의 직원인지라 직접 ABC 주식을 살 수 없다고 하자. 그래서 K가 나에게 부탁한다. 내가 내 돈으로 ABC 주식 1000주를 주당 10만원에 사고(총 1억원), 이 주식이 만들어내는 모든 수입을 K에게 주기로 한다. 그 대신 K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내가 투자한 금액인 1억원에 대한 수수료, 예를 들어 1%를 지불하기로 하는 것이다. 만일 주가가 5% 오르면, 나는 K에게 1억원의 5%인 500만원을 지불하고, 그는 나에게 1억원의 1%를 준다. 그러나 반대로 주식이 5% 내려가면 내가 K에게 주어야 할 돈은 없고, K는 주식의 손실 500만원과 수수료 100만원을 나에게 지급해야 한다.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문제가 없지만, 주가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나는 K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게 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K의 채무가 그가 지급할 수 없는 액수까지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나에게 닥친 손실을 줄이기 위해 ABC 주식을 팔아야 한다.
빌 황이 고용주나 다른 사람 눈치를 봐서 이런 계약을 했을 리는 없다. 그가 왜 TRS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자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주식 수익에 베팅했다. 불행하게도 반대 상황이 터졌다. 손실이 너무 빨리 커지면서 그를 위해 주식을 대신 샀던 은행들이 자신들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 매각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옵션과 스와프, 그리고 선물 등을 파생 금융 상품이라고 한다. 원래 이것들은 사업이나 투자에 따른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쓰인다. 예를 들어 소고기가 많이 필요한 햄버거 체인점은 비용의 안정성을 위해 소고기 선물을 사용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상품들이 투자 위험도를 더 높이는 방향에 사용된다. 나의 그루폰 풋옵션이 휴지 조각이 되었다면 나는 이 옵션을 산 돈만 잃었겠지만, 옵션을 팔거나 선물 또는 스와프를 이용했다면 내가 투자한 돈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편히 잠자기 위해, 배우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위 칼럼의 투자 관련 내용은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BBH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