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저녁, 나는 우리 가족이 다니는 뉴저지 참빛교회에서 투자 세미나를 했다. 몇 달 동안 여러 분들로부터 투자 관련 조언을 부탁하는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투자 회사다 보니 ‘무엇을 매입하라’든지 ‘무엇을 피하라’는 것 같은 구체적인 조언을 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만큼, 개인 투자자의 시장 이해를 높이고 투자 전략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세미나를 제안했다. 매우 오랜만에 연단에 서서 강연하고 문답을 진행했다. 될 수 있으면 직접 회사를 골라 투자하는 방법보다는 S&P 500 같은 주가 지수에 맞춰 투자하는 펀드를 선택하라는 조언부터, 투자할 기업을 선택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까지 약 45분 동안 강연을 하고 문답에 들어갔다.

일러스트=안병현

예상한 대로 가상 화폐에 관한 질문이 들어왔다. 온라인으로 세미나에 참석하신 한 분이 “코인 트레이딩을 도박으로 보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답을 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사적 인물의 잊지 못할 한 마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친구이자 업계 동료인 L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채권 애널리스트다. 그의 대단한 능력에 자주 감탄했고 훌륭한 인격을 존경한다. 왜 그저 한 자산운용 회사의 시니어 애널리스트로만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로 그는 똑똑하고 박식하며 근면한 사람이다. L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역사상 최대 투자 사기의 주인공, 버나드 메이도프가 의심스럽다면서 남들보다 먼저 근거를 찾아냈을 때였다. 메이도프의 폰지형 사기(이윤 창출을 하지 않고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으로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 사기)가 세상에 드러나기 3~4년 전 일이었다.

6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했고, 결국 17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투자자들에게 입힌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에 150년 형을 선고받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82세였던 그가 교도소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올해 4월 14일에 알려졌다. 그 한 달 후 내가 연 세미나에서 가상 화폐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떠올렸던 역사적인 인물이 바로 메이도프였다.

한때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이었던 그는 오랫동안 저명한 증시 전문가였다. 맨해튼 펜트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 별장을 소유하고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등 최고 부유층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매년 8~12%의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 그래서 아무나 고객이 될 수 없는 투자 펀드를 운용했다. 메이도프 펀드의 매력은 바로 이 두 가지에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매년 평균 10%의 이윤을 보장해주었고, 든든한 ‘빽’이 없으면 고객이 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무슨 방법으로든 기를 써서 메이도프 펀드의 고객이 되려고 했고, 이 펀드에만 투자하는 피더 펀드(feeder fund·다른 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펀드)까지 생겼다.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에 휘말렸던 개인 투자자들은 거의 다 이런 피더 펀드를 통해 메이도프에게 돈을 보냈다.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메이도프의 투자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내 친구 L이었다. 메이도프 펀드가 사용했다고 주장한 전략, ‘분할 태환 방식(split strike conversion)’은 콜과 풋옵션을 통해 주가의 변동 범위를 줄이는 테크닉이다. 하지만 L을 비롯한 이들은 이 테크닉을 사용해서 수십억달러를 운용하는 건 어렵고, 만약 운용한다 해도 매년 8~12%의 수익을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황이나 닷컴 버블이 터져서 나스닥 지수가 반값이 되었는데도 매년 10%를 웃도는 메이도프의 투자 성과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대부분 투자자는 이런 소수 전문가의 주장을 오랫동안 무시했다. 메이도프는 자신을 의심하는 투자자가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계좌 전액을 빼내겠다고 하면 언제나 군소리 없이 돈을 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돈을 돌려 달라는 투자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하자, 메이도프의 사기도 세상에 밝혀졌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메이도프 펀드는 증시에 아예 투자하지 않았고, 계좌 잔액이나 고객에게 보낸 월 명세표 따위는 거짓으로 만들어낸 허구였다. 한 마디로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였던 것이다. 메이도프는 돈을 돌려 달라는 고객 A의 요청을 고객 B, C, D 등이 보내는 투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금융 위기 때문에 돈을 회수하겠다는 고객이 새로운 투자금을 보내주는 고객보다 훨씬 더 많아지기 전까지는. 결국 전형적인 폰지 사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150년 형을 선고받은 메이도프는 자신의 사기에 대해 뉴욕 매거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돈 욕심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레드 플래그(경고 표시)를 무시했다. 그게 내 사기를 가능케 했다”고.

어떤 적정 주가 계산법을 써도 비싸다는 결론이 나오는 ‘핫’한 가상 화폐가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더구나 B, C, D 등이 더 비싼 값으로 내 코인을 사줄 거라는 기대에 의존해 가상 화폐를 사들이는 A들이 많은 세상이다. 이런 환경을 가능케 만든 것은 우리의 욕심이고, 또 누구나 볼 수 있는 ‘레드 플래그’들을 애써 무시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아닐까.

※위 칼럼의 투자 관련 내용은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BBH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