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타로점으로 볼 수 없는 질문은? ①매매운 ②연애운 ③남북통일 ④상대방의 속마음’. 난센스 퀴즈가 아니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정식으로 등록된 민간 자격증 ‘타로 상담 전문가’ 시험에 나오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20개만 풀면 누구나 타로 상담 전문가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다. 단, 발급 비용 8만원만 낸다면.

곳곳에서 민간 자격증이 남발되고 있다.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업체들이 ‘자격증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나라에서 인정해준 자격증인 만큼 취업에 도움이 된다”면서 취업 준비생들과 재취업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을 현혹한다.

/일러스트=안병현

◇민간 자격증 4만개 시대

2021년 5월 기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등록된 민간자격은 4만2532개. 9년 전인 2012년(3378개)에 비해 열 배 이상 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새로 생긴 자격증만 6079개다.

이 중 상당수는 실체가 모호한 자격증이다. ‘출장세차마스터’ ‘군입대설계사’ ‘실버택배 전문가’ ‘누룽지 전문가’ 등이 모두 실제로 발급되고 있는 자격증이다. 홈페이지나 문의 번호조차 없는 발급 기관도 수두룩하다.

전문성이 필요한 산후관리사, 재난구호사, 베이비시터 등 자격증도 발급받기 쉽기는 마찬가지다. 한 교육개발원은 30만원을 내고 일주일간 교육을 받으면 산후관리사 자격증을 발급해준다. 이 업체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 민간 자격증으로 등록된 만큼 공신력 있는 자격증”이라면서 “경력 단절 여성이 재취업을 위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스스로 만든 자격증으로 자신들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곳도 많다. 한 필라테스 학원은 필라테스 관련 자격증을 네 개나 만들어 놓고 학원에 소속된 강사들이 이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자격증 5개 따는 데 1시간

80여 개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 한 교육원에서 직접 자격증 시험을 쳐봤다. 교육과 시험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이 업체는 회원 가입만 하면 40만원에 달하는 수강료를 전액 무료로 할인해준다고 했다. 먼저 바리스타 자격증을 신청했다. 공지사항에는 20분 길이의 강의 24개를 60% 이상 수강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을 전혀 듣지 않고도 바로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시험 과정에서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기자는 모든 문제를 구글에서 검색해 답을 입력했다. 한 번 검색해 나오지 않는 답은 찍었다. 정확히 14분 22초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 커트라인인 60점을 훨씬 웃도는 75점이었다.

내친김에 다른 시험도 응시해봤다. ‘보드게임 지도사’ 과정은 시중에 판매되는 보드게임의 규칙에 대한 문제가 주를 이뤘다. 온라인 쇼핑몰에 등록된 상품 페이지에 그대로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분노 조절 상담지도사’는 인터넷 검색조차 필요 없는 상식 수준의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바리스타, 보드게임 지도사, 분노 조절 상담지도사, 자기주도 학습 코치 상담사, 타로 상담 전문가 등 다섯 개의 자격증을 따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이대로라면 자격증 수십 개를 가진 ‘스펙왕’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합격 통보를 받자 자격증 발급 안내 페이지가 떴다. 업체는 자격증 1개당 발급 비용 8만원을 요구했다. 자격증 다섯 개를 발급받으려면 총 40만원이 필요하다. 2주 안에 비용을 내지 않으면 발급 자격이 박탈된다고 했다. 기자는 돈을 내지 않았다.

◇코로나 터지자 방역 자격증이?

자격증 시장도 유행을 따라간다. 새 직업이 생기면 관련 자격증이 쏟아진다. 지난해 8월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 호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마자 탐정 자격증 시장이 호황을 이뤘다. 지난해부터 새로 생긴 ‘탐정’ 관련 자격증만 42개. 민간조사사, 국제명탐정, 사립탐정사 등 호칭도 가지각색이다.

‘방역’ 관련 자격증도 유행이다. ‘방역관리사’ ‘K방역중개사’ ‘학교방역예방관리사’ 등 이름에 ‘방역’이 들어간 자격증은 총 11개. 이 중 8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일어난 지난해 이후 생긴 것들이다. 방역관리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 교육원은 수업료, 교재비, 자격증 발급 비용 명목으로 20여만원을 받고 있다. 이 교육원 관계자는 “4시간 교육을 수강하고, 15분 내외의 간단한 시험만 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면서 “미리 증명사진을 준비해오면 당일 자격증 발급도 가능하다”고 했다.

2015년부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민간자격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는 총 541건. 대부분은 환불과 관련된 피해 사례라고 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매년 꾸준히 피해 사례가 접수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누구나 자격증 만들고, 사후 관리도 안 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상 누구나 민간 자격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자격 등록에 필요한 서류는 ‘민간자격관리 운영규정’을 제외하면 주민등록초본, 사업자 등록증 등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민간자격관리 운영규정마저도 서류 작성을 대행하는 행정사를 통하면 아무런 준비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민간 자격증 등록을 대행하는 한 행정사무소에 ‘꽃꽂이 관련 자격증을 만들고 싶다’고 문의하자 ‘자격증 한 개당 40만원을 내면 되고 여러 개를 한 번에 만들면 할인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행정사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우리가 운영 규정을 만들어 대신 올려주겠다”면서 “아무런 서류도 준비할 필요 없다. 시험 응시 비용만 정해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다 만들어준다”고 했다. 한 자격증을 1급부터 10급까지 만들 수도 있고, 비슷한 내용의 자격증을 여러 개로 쪼개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이 행정사의 설명이다. 2021년 5월 기준 등록 민간자격 운영 기관은 총 1만896개. 이 중 법인은 4408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인 및 기타 단체다.

관리·감독 체계도 엉망이다. 제대로 교육이 진행되는지, 시험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없는지 등을 감독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경기도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A씨는 얼마 전까지 미니어처 관련 민간 자격증을 세 개나 발급했다. 수강생이 적은 두 개의 자격증을 최근 스스로 폐지했다는 A씨는 “처음 민간자격등록 심사를 거친 다음부터는 소관 부서나 지자체에서 자격증 운영과 관련해서 연락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그냥 자체적으로 시험을 치고, 자격증을 발급해줬다”고 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민간자격센터 관계자는 “연구원은 각 부처로부터 자격증 등록에 관한 업무만 위탁받아 진행하고 있고, 사후 관리는 전적으로 주무부처 소관”이라면서 “만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무 부처인 자격증에 문제가 있다면 문체부에서 조처를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