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동쪽 언덕에 우뚝 선 구(舊) 대한의원(대한제국 때 건립, 현 서울대학교병원) 1층 복도 끝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된 애물단지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 사람 하나 너끈히 들어갈 크기의 쇠로 만든 둥근 통인데 단단히 여닫는 문이 있고 안을 들여다보는 유리창도 뚫려있다. 압력을 측정하는 게이지 등 이런저런 장치가 달려 있어서 언뜻 보기에 소형 잠수함이나 우주선 캡슐을 닮았는데 세련된 맛이 없는 육중한 모습이 동네 철공소에서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지 싶다.
한창 잘나갈 때는 ‘고압 산소 치료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응급실 노른자위 방에 똬리를 틀고 앉아 전속 의료기사의 보살핌 속에서 상전 대접을 받는 귀하신 몸이었는데 이제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제 한 몸 누일 곳조차 없게 됐으니 새삼 세월 무상을 느끼게 한다. 과거 겨울철에 연탄가스(정확하게는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한꺼번에 응급실로 들이닥칠 때는 다급한 마음에 서로 먼저 치료받으려는 환자 가족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져서 때아닌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등 너무도 소중한 보물이었는데….
코흘리개 시절에는 장작, 숯과 조개탄 등으로 겨울을 났고, 초등학교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구공탄을 땔감으로 썼다. 대부분의 사람이 단독 가옥에 살았고 난방 형식은 온돌이었다. 아궁이에 연탄불을 넣으면 데워진 공기가 구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방바닥을 따뜻하게 한 후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식인데, 방바닥의 갈라진 틈새로 어느 정도의 연기가 새게 마련이다. 연탄이 잘 타면 문제가 없는데 젖은 연탄이거나 흐린 날 굴뚝에서 연기를 잘 빨아들이지 못하면 불완전 연소하면서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스멀스멀 소리 소문 없이 방으로 퍼진 연탄가스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치고 머리 한두 번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장시간 노출되면 뇌까지 마비시키고 종국에는 생명을 잃었다. 연탄가스를 들이마시고 사경을 헤매던 사람을 불과 한두 시간 만에 거짓말같이 멀쩡하게 살려내는 요술방망이가 다름 아닌 고압 산소 치료기다.
연탄의 불완전 연소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가 들어갈 자리에 단단히 달라붙어 산소 운반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산소 부족 현상을 일으킨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닌가. 지체하지 않고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고압 산소 치료기에 넣은 후 높은 압력으로 산소를 공급하면 헤모글로빈과 결합한 일산화탄소를 서서히 밀어내고 그 자리에 산소가 들어간다.
구급차에 실려 온 의식불명의 환자를 곧장 고압 산소 치료기에 누인 후 의료진과 가족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인 채 유리창을 통해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이면 박수가 터지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살았구나’하고 두 팔을 치켜들어 만세를 불렀다. 통 속의 압력을 약 2.5기압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고막을 사이에 두고 압력 차가 생기는데 이로 인한 아픔을 느꼈다는 것은 의식이 돌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압 산소 치료기는 저승 문턱의 수많은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살렸다. 실로 고맙고 또 고마운 기계가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주거와 난방 문화의 변화로 연탄가스 중독이 거의 사라졌다. 고압 산소 치료기는 이후 창상 치료에 간간이 쓰였는데 그마저도 쓰임새가 신통치 않아 용도 폐기의 처지가 됐다. 국민 건강을 지켜낸 일등 공신을 고철로 처분하자니 안타깝고, 그렇다고 턱없이 부족한 공간에서 계속 운영할 재주가 없는 응급실 책임자는 걱정이 태산이라는 소문이 병원 내에 돌았다. 결국은 응급실에서 병원 측에 고압 산소 치료기를 의학박물관에 기증한다는 통보를 보냈다. 귀중한 유물을 기증한다니 반가운 일이긴 한데 문제는 놓을 자리였다. 병원 내 박물관의 전시장은 규모가 작고 수장고도 넉넉하지 못한데 고압 산소 치료기는 무게와 부피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고압 산소 치료기를 싣고 와 복도 끝에 일단 내려놓았는데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히 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마침내 처리 문제가 병원장 주재 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고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보존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을 뿐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박물관 책임자는 아니어도 회의를 끝내면서 ‘죽마고우’에게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고 싶었다. 오갈 곳 없는 처량한 쇳덩어리는 임시로 놓였던 복도 끝에 큰 덩치를 의탁할 수밖에 없게 됐는데 조자룡 헌 칼 쓰듯 종횡무진 의료 현장 일선을 누비던 호걸의 말년이 노숙자 신세라니 진정 고약한 경우 아닌가.
은퇴하고 2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병원에 갔었다.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 언제 봐도 정겨운 붉은 벽돌의 시계탑 건물 옆을 지나다 창문 속에 비닐을 덮고 있는 고압 산소 치료기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다가가 먼지 낀 유리 창문에 입김을 불고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졌어도 듬직하고 의연한 자태는 옛 모습 그대로다. 소용없으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세상만사 정해진 이치라지만 고락을 같이했던 옛 동지의 쇠락한 모습을 보며 동(動)하는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 무심하고 야속한 세월이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참 힘들었던 한 해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