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는 TV, MZ세대는 SNS로 올림픽을 즐긴다. 지난 9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TV 중계로 보는 시민들. /뉴시스

#1. 주부 손영희(47)씨는 지난 11일 저녁 최민정이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는 장면을 혼자 거실 TV로 봐야 했다. 가족과 함께 올림픽 중계를 보기 위해 치킨까지 배달 주문했지만, 각자 방에서 다른 방송을 보느라 아무도 거실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은 태블릿PC로 넷플릭스 영화를, 남편은 안방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대선 후보 TV 토론을 보고 있었다. 손씨는 “예전엔 한국 선수가 올림픽 메달을 따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질렀는데 이번엔 너무 조용해서 흥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2. 지난 16일 낮 12시쯤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 사무실.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친 직원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데스크톱 컴퓨터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덴마크전 중계를 보고 있었다. 이날 네이버 모바일 중계에는 동시 접속자가 40만명 가까이 몰렸다. 이 회사 50대 임원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는 전 직원이 회의실에 모여 한국을 응원하곤 했는데 이제는 올림픽도 각자 알아서 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볼거리 많은 세상, 올림픽도 하이라이트만

올림픽 등 스포츠를 즐기는 양상이 바뀌고 있다. 온 가족이 거실 TV 앞에 모여 생중계로 대표팀 경기를 보며 목 터져라 응원하던 ‘집관’(집에서 올림픽 경기를 봄) 풍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신 MZ세대를 중심으로 중계방송 대신 온라인에 별도 편집돼 올라온 경기 영상을 보거나, 스타 선수들의 SNS(소셜미디어)를 찾아다니며 올림픽 관련 영상 게시물을 감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변화는 올림픽 TV 시청률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2018 평창올림픽 당시 지상파 3사 생중계 시청률은 최고 65%를 찍었지만, 베이징올림픽에선 가장 관심을 모았던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경기에서 46%대를 기록한 게 가장 높았다. 쇼트트랙을 제외한 대부분 한국 경기 시청률은 20%를 밑돌았다. 올림픽이 열리면 동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이 두 자릿수 이상 떨어지던 모습도 이번 올림픽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올림픽을 생중계로 보려는 시청층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이런 변화는 다양해진 영상 매체의 등장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보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세대별로 올림픽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여전히 TV 생중계를 챙겨 본다면, 10~30대는 SNS·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유튜브 등에 올라온 올림픽 관련 영상은 10~30대 층에 높은 인기를 얻었다. 선수들 연습 장면이나 실수 장면 등 중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는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틱톡 이용자가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훈련 모습을 편집해 올린 영상. /틱톡

베이징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대표팀 맏형 곽윤기는 올림픽 동안 ‘설날을 보내는 방법’ ‘올림픽에 가면 꼭 하는 것’ ‘여자 계주 현장 반응’ ‘외국 선수들과 오징어게임’ 등 선수촌 내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을 10여 개 올렸다. 30만명 수준이던 곽윤기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는 올림픽을 거치며 120만명으로 훌쩍 뛰었다.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서도 올림픽 현장을 담은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 국기를 게양하는 중국 군인의 얼굴이 깃발에 감싸인 영상 조회 수는 4200만건을 넘겼다. 이런 경향은 해외에서도 나타났다.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는 미국 내 베이징올림픽 방송 일일 평균 시청자가 1140만명으로 평창 대회(1980만명)보다 크게 떨어지며 역대 동계 대회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올림픽 개막 후 1주일 동안 미국 내 틱톡 다운로드 수는 170만건으로 평소보다 3~4배 높았다.

30대 직장인 박형근씨는 “요즘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모바일TV 등 볼거리가 워낙 많다 보니 언제 메달이 나올지 모르는 올림픽 경기를 한두 시간 보는 것보다 하이라이트 부분만 편집된 클립 영상을 주로 본다”고 했다.

◇라이브보다 ‘SNS 중계’가 재밌다

일부 젊은 층에겐 천편일률적인 방송사 중계 해설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경기 편집 영상이 더 화제다. 미국 인기 코미디언 레슬리 존스가 올림픽 루지 경기를 시청하면서 평가한 틱톡 영상은 12만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한 뷰티 인플루언서가 남자 피겨스케이팅 라이벌인 네이선 첸(미국)과 하뉴 유즈루(일본)의 화장법을 비교한 영상은 100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모바일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채팅창에서 선수와 경기에 대해 감상을 나누는 것도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생 김석민씨는 “국내 방송사 중계진은 과도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반말을 해서 거북할 때가 많고, 메달이 나올 만한 종목만 중계해서 선택권이 적다”며 “온라인에선 TV가 보여주지 않는 설상 종목을 공유해 선수에 대해 서로 평가하며 ‘와,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 공감하기도 한다”고 했다.

동계 종목을 직접 체험하거나 스타 선수를 패러디하는 영상도 인기다. 한 국내 틱톡 이용자는 올림픽 쇼트트랙 판정 논란을 풍자하는 영상을 올려 높은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도쿄 하계 올림픽 때에도 여자 배구의 김연경, 남자 양궁 오진혁 패러디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20대 틱톡 이용자는 “과거 올림픽 경기 다음 날이면 학교, 회사에서 삼삼오오 모여 올림픽 얘기를 했는데 이제는 그 무대가 SNS로 옮겨지고 있다”고 했다.

TV 없이 사는 1인 가구가 증가한 것도 올림픽 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경기 영상을 찾아 볼 수 있게 되면서 올림픽 경기를 생중계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떨어진 것이다. 금메달을 못 따면 죄인 취급하던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스포츠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한국인 스타가 나오면서 메달 색과 관계없이 응원을 보내는 성숙한 관전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