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나 캐릭터 제품을 구매해 리뷰하는 유튜브 ‘나나미의 혼덕일지’를 운영하는 조수현씨가 만화 ‘신의 괴도 잔느’에 나왔던 완구류 등을 펼쳐놓은 모습. /나나미의 혼덕일지

“여러분, 히사시부리(반갑습니다)!”

조수현(27)씨는 이른바 ‘어른이’이자 ‘덕후’다. 일본 만화나 캐릭터 제품을 리뷰하는 유튜브 채널 ‘나나미의 혼덕일지’를 운영하고 있다. 짱구, 카드캡터 체리, 신의 괴도 잔느, 명탐정 코난을 좋아하고, 헬로키티 같은 귀여운 일본 캐릭터도 좋아한다. 조씨는 최근 원화 대비 엔화 환율이 떨어지는 ‘엔저 현상’ 덕분에 즐겁다. 조씨는 “저 같은 덕후들은 한국에서 구매할 수 없는 일본 발매 한정판이나 특전 상품 등 희소성 있는 제품을 꼭 수집해야 하는데 엔저 현상 덕분에 더 많은 물건을 사 올 수 있게 됐다”며 “이번 기회에 버킷리스트였던 일본 완구류를 사 모아 포털사이트에 잡화점을 차리게 됐다”고 했다.

지난 4월 ‘100엔=1000원’이라는 환율 공식이 깨지며 엔화 가치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사람들은 웃음꽃이 폈다. 엔저 현상을 기회 삼아 이참에 일본 피겨, 게임, 간식 등 더 많은 물건을 사서 모으자는 반응도 나온다. 엔화가 헐값일 때 미리 쟁여 두려는 사람도 생겨 개점휴업 상태였던 서울 중구 명동 일대의 환전소에는 엔화를 구매하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엔화를 사들이는 ‘환테크’도 인기다.

대구 북구에 사는 대학생 김모(22)씨는 일본 만화 잡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팩, 아크릴 스탠드 제품은 물론 라면, 간식, 안약, 파스 등도 일본에서 직접 구매해 쓰고 있다. 김씨는 “특히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는 한국에서 구매하면 6만5000원인데, 지금 일본에서 직접 구매하면 2750엔, 한화로 2만75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며 “수수료, 환율 등 다 따져도 이득을 봐서 이 기회에 물건을 많이 사고 있다”고 했다. 경기 광주에 사는 김현지(26)씨는 닌텐도 스위치를 즐겨해서 게임 종류만 10개를 가지고 있다. 김씨는 최근 엔화 가격이 낮아지면서 한국에서 다운로드하면 3만9100원인 게임을 일본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훨씬 저렴하게 구입했다. 김씨는 “3054엔짜리인데, 엔저 덕분에 한화로 2만9137원에 구입해 만원이나 이득을 봤다”고 했다.

일본 유학생들은 엔저 현상 덕분에 체류 부담이 낮아졌다. 나고야 지역 대학에서 4월부터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정모(22)씨는 “한 달에 기숙사비 2만1500엔, 주당 적게는 6000엔에서 1만엔까지 생활비가 나가는데, 부모님께서 교환 비용을 송금해 줄 때 부담이 낮아졌다”고 했다. 정씨가 입국하기 직전인 올해 3월 말만 해도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넘었지만, 지금은 1000원 아래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이번 달 들어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100엔당 950원 안팎 선을 유지하고 있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환전소도 간만에 분주해졌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직원인 최효연(40)씨는 “5월까지만 해도 엔화를 환전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일본 여행을 가거나, 따로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엔화를 비축해두려는 사람들이 하루 대여섯 명씩 100만원 정도를 환전해 간다”고 했다.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 틈을 타 엔화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환전했을 때 차익을 노리고 엔화를 미리 사들이는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 엔화 예금 잔액도 늘었다. 지난해 12월 말만 해도 5대 시중은행 합산 엔화 예금 잔액은 4964억엔이었으나 지난 15일 기준 6057억엔으로 22% 증가했다.

오는 29일, 김포~하네다 항공 노선이 2년 3개월 만에 운항을 재개하면서 여행자들도 엔저 현상에 들뜬 분위기다. 여행사 관계자는 “양국 교류에 상징적 노선으로 꼽히는 만큼 이후 일본 여행의 빗장이 더 풀릴 것 같은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오는 10월 오사카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직장인 최모(28)씨는 “엔화가 100엔당 950원 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쪼개서 사둘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