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증권 분석 애널리스트답지 않게 투자나 경제와 같은 주제의 논픽션보다는 세상 사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픽션을 훨씬 더 즐긴다. 영화나 TV 드라마보다는 오디오북으로 제작된 소설이나 라디오 드라마를 선호한다. 내가 화면을 직접 볼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영화나 TV 드라마는 누구와 같이 보는 것이 더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다. 대학 시절엔 친구들과, 그 후론 아내와 같이 TV를 자주 보곤 했으니까.
그러나 요즘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비디오 콘텐츠를 개인에게 제공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저녁 식사 후나 주말에 TV 앞에 앉아 드라마를 같이 보는 것보단, 개인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편한 시간에 혼자 즐기는 것이 더 보편화되고 있다. 내게도 근래에 같은 방법으로 즐기게 된 드라마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버전>.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국 최초의 자폐인 변호사 스토리다. 올해로 28년이 된 내 커리어를 가능케 해준 동료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월가에서 증권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단 얘기를 꽤 많은 사람에게 했던 것 같다. 학교 교수들, 주위 친구들이나 어른들, 대학원 연구와 관련해서 만나게 된 월가 분야 사람들 등등. 오래된 지인들은 이것을 또 하나의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겼다. 노벨상 수상을 향해 달리는 물리학자, 정신과 의사, 명문대 교수, 그리고 이젠 애널리스트? 별을 잡기 위해 허공에 빈손을 뻗는 듯한 꿈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기에, 주변 지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영우에 빠져들고 있는 내 뇌리에 그 당시 대화를 많이 주고받았던 한 월가 회사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시각장애가 있다고 해도 신순규란 사람에게 놀랄 만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 월가 회사들이 그를 모셔가기 위해 굉장한 경쟁을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즉 앞을 못 보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해도, 대박을 내는 증권 선택을 매번 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워런 버핏을 따라잡거나 초월할 만한 투자 천재라면 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토익 990점과 변호사 시험 성적 1500점 이상의 스펙을 자랑하는 우영우는 졸업 후 6개월 후에야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이력서 첫 장에 적힌, 대형 로펌들이 다퉈 모셔갈 만한 실력을 증명하는 사실들이 두 번째 장에 기록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몇 글자에 덮여 고용이 늦어진 것이었다. 그녀를 고용한 로펌 대표 선영에겐 영우를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었지만 정의나 공정, 그리고 우영우의 능력에 기회를 줘보자는 건전한 동기가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영우의 커리어 쌓기를 본격적으로 지도하게 될 명석 역시 자신이 느끼는 거부감이 장애에 대한 편견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만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다. 또한 같이 일하게 된 동료들도 괴상하고 어이없고 기막히고 때로는 화나게까지 하는 행동 등을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등 많게든 적게든 아량이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영우의 커리어를 가능케 할 만한 이들이 함께하게 된 것이다. 내게도 그런 분들이 서너 명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적어도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재미있는 스토리다. 독자나 시청자의 관심, 마음, 감정 등을 움직일 만한 픽션에는 상상이 쉽지 않은 ‘만약(what if)’이라는 가정이 붙는다. 딸이 눈먼 아빠의 광명을 위해 죽는 선택을 한다면, 거지와 왕자가 바뀐다면, 인터넷과 미디어 사회가 된 현대 대한민국에도 아직 왕이 있다면 등등. “만약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대한민국에서 변호사가 된다면?”을 상상해내 인기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작가와 제작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심각한 주제로 무거워질 수도 있는 스토리 아니던가. 그런데 우영우의 이야기에는 많은 시청자를 끌 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다. 유머와 로맨스, 출생의 비밀과 권력 싸움, 통쾌한 약자 승리, 자폐인의 진실함이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따스함까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스토리텔링 아트의 성공적인 결실이라고 본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해가 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있는 드라마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생수병 뚜껑도 열지 못하고, 회전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영우는 어렸을 때부터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한다. 법학 책에서 읽은 모든 내용과 법원 판례까지도. 거기에 엉뚱하기도 하고 예리한 관찰력을 더해 기발한 답을 찾아내는 천재다. 영우의 이런 뛰어남이 또 하나의 편견이 돼, 법 커리어 등 어려운 진로를 추구하는 장애인들에게 역차별적 영향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내가 투자 천재가 아니듯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에 영우처럼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는 아주 드물 것이다. 장애인들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야 기회를 얻게 되는 불공평에 한몫을 하진 않겠나 하는 염려까지 든다.
물론 한 분야의 선구자가 되려면, 예를 들어 한국 최초 자폐인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기 높은 이 드라마로 인해 그 남다름의 기준이 너무 높아지진 않았나 하는 우려가 든다. 이 생각이 과잉 반응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듯 한국 최초 자폐인 변호사가 멀지 않은 미래에 첫 출근을 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애널리스트 Soon Kyu Shin,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S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