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인스타그램

당신의 나이를 추정해보겠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란 이름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학창 시절 인기 있던 ‘저버 청바지’”라고 외친다면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을 확률이 높다. 반면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옷”이라고 답한다면? 1990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1972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국내에선 1992년 당시 가격이 6만~7만원대로 비싼 편에 속했으나, ‘저버 청바지’로 불리며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에게까지도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고교 시절을 보낸 이들을 그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배우 정은지가 “청바지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한다 안 카나!” 하며 조르던 그 바지가 마리떼다.

외환 위기와 글로벌 스파(SPA) 브랜드의 유행을 이겨내지 못하고 철수했던 마리떼가 최근 화려하게 복귀했다. 국내 의류업체 레이어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의 판권을 사들여, 국내에 ‘리론칭(다시 선보임)’한 것이다. 지난해 2월 더현대 서울을 시작으로 신세계 대전점, 무신사 등 국내 굵직한 온·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더니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360% 늘었다. 추억에 젖은 구(舊)세대만 찾는 게 아니다. 가수 제니, 배우 차정원 등이 입으면서 아예 마리떼를 처음 접해보는 2030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29년 전 대학생 때 처음 저버 청바지를 사 입었다는 김모(48)씨는 “얼마 전 대학생 조카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왔기에 ‘이 브랜드가 아직 있느냐’고 물었다가 ‘아재(아저씨)’ 취급을 당했다”면서도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어 반가웠다”고 했다.

저버에 앞서 1980~90년대 초 유행했던 청바지 브랜드 ‘리(LEE)’도 마찬가지. 2004년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 브랜드는 지난해 로고가 크게 그려진 티셔츠와 모자 등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며 무신사 판매 랭킹 10위권에 진입했다. 굵은 스티치와 뒷주머니의 말발굽 자수가 특징인 프리미엄 청바지 ‘트루릴리전’, 소지섭·김하늘 등 톱스타들을 발굴했던 ‘스톰’도 과거 비슷한 이유로 국내를 떠났다가 최근 리론칭한 브랜드들이다.

‘LEE’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슬기. /인스타그램

삼성패션연구소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계가 잊힌 옛 브랜드에 주목하고 있다”며 지난해 10대 패션 이슈로 리론칭 브랜드를 꼽았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과거 브랜드들이 다시금 인기를 얻는 데는 ‘아네모이아(Anemoia)’ 현상이 중요한 이유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아네모이아’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용어로, 최근 젊은 세대들이 자주 찾게 되면서 ‘힙지로’가 된 ‘을지로’나, ‘진로이즈백’ 열풍,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개봉 등이 아네모이아 정서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 시작에는 팬데믹이 있다. 임 소장은 “예전의 스타일리시했던 시대를 돌아보고 그 시절 트렌드와 유행을 돌아보며 향수에 젖는 계기를 강화한 것이 팬데믹”이라며 “90년대는 패션에서 미학적으로 아주 멋진 시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했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신인류로 불렸던 X세대의 시대였다”고 했다.

특히 이런 현상은 부모인 X세대와 그들의 자녀 세대이기도 한 Z세대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강화된다. X세대가 쓰고 입고 즐기던 것들을 담은 90년대 패션에 대해 Z세대가 아네모이아 정서를 더욱 강력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이모(47)씨는 “딸이 얼마 전 내 대학생 때 사진을 보더니 ‘엄마 패션이 멋있다’고 하더라”며 “오래전 사놓고 안 입는 ‘LEE’ 청바지가 있는데 이번에 딸과 함께 입어볼 생각”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