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텀 스레드’에서 주인공이 아스파라거스 위에 녹인 버터를 붓는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1954년의 런던, 영국의 레이놀즈 우드콕(대니얼 데이루이스)은 천재 소리를 듣는 의상 디자이너다. 귀족은 물론 왕가의 드레스도 디자인하고 제작해 입는 이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북돋아 주지만 그는 매우 강박적이고 통제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머리를 식히려고 시골의 별장에 갔다가 음식점의 접객원 알마(비키 크리프스)를 만나 단숨에 호감을 느낀다. 감정은 상호적이어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알마는 레이놀즈를 따라 런던으로 올라와 동거하며 직원과 모델, 그리고 영감을 주는 뮤즈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단숨에 타올라 엮어준 사랑의 불꽃이 사그라들자 두 사람은 갈등을 빚는다. 레이놀즈는 모든 요소를 내키는 대로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고, 함께 일하는 누나 시릴을 비롯한 모두가 그에게 맞춰왔지만 알마는 이를 거부한다. 늘 만족하지 못하며 거리를 두는 레이놀즈에게 좀 더 다가가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려 드니 둘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마는 시릴의 만류를 무릅쓰고 레이놀즈를 위해 낭만적인 둘만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만 차갑게 거부당한다. 레이놀즈가 잘 돌아가는 일상의 루틴을 깨려는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식탁의 아스파라거스를 놓고 폭발한다. 레이놀즈는 아스파라거스에 기름과 소금만 곁들여서 먹는데, 알마가 녹인 버터 소스를 내놓은 것이다. 결국 둘은 싸운다.

꼭 저렇게까지 갈등을 빚어야 하나? 두 사람의 강한 자아가 이끌어 가는 영화이기에 ‘팬텀 스레드’는 내내 피곤하다. 보고 있노라면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레이놀즈보다 이를 늘 그냥 받아주지 않는 알마 쪽으로 마음이 기울지만 아스파라거스만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정도를 맞춰 주는 건 자존심 등과 별 상관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녹인 버터든 기름과 소금이든, 아스파라거스는 손질과 조리가 간단한 채소이다. 흔히 스테이크의 곁들이로 통하지만 오히려 외따로 먹을 때 더욱 맛있다. 손질이 중요한데 정석을 따르자면 밑단을 손으로 살짝 구부려 꺾이는 지점을 찾는다. 이 지점부터 아래쪽으로는 질기고 단단하다는 징표이므로 다발 전체의 밑동을 같은 길이로 썰어 버린다. 그리고 채소 껍질 벗기개(베지터블 필러)로 윗동에서 밑동 방향으로 껍질을 가볍게 벗겨낸다. 물 1.5리터에 소금 2큰술 정도를 더해 팔팔 끓인 뒤 손질한 아스파라거스를 더해 3~4분 정도 데쳐낸다. 그럼 조리는 끝이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레몬즙이나 발사믹 식초, 그리고 올리브기름 약간을 끼얹으면 고급 요리의 느낌이 난다. 파스타에 쓰는 파르미자노 레자노 같은 치즈를 갈아 뿌려도 좋다. 물론 취향이라면 녹인 버터도 좋다.

마음을 쏟아부은 저녁 식사가 거부당하자 알마는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한다. 레이놀즈의 일상을 좀 더 느리게 흘러가도록 만들겠다며 들에서 독버섯을 채취해 미량을 그의 차에 몰래 더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신 레이놀즈는 배탈과 몸살 등의 증세로 한참을 앓는다. 그리고 깨달은 바가 있는지 변화를 추구하겠노라며 알마에게 청혼한다. 결국 알마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역시 둘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 바꿔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레이놀즈는 곧 원래의 그 자신으로 돌아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그의 미학에 지루함을 느낀 핵심 고객층이 경쟁 의상실로 이탈하며 레이놀즈는 내상을 입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결국 레이놀즈는 알마가 모든 것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내치려 들지만 그는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골 별장에서 알마는 아예 독버섯이 통째로 든 오믈렛을 준비하는 초강수를 둔다. 이번에는 레이놀즈도 알마의 계획을 알아차리지만 독버섯 오믈렛을 알마가 보란듯이 먹고 곧 찾아올 고통을 기다린다. 그런 그에게 알마는 키스를 하며 좀 더 자신의 통제 속에 놓인 미래를 그린다. 아이를 낳고 그의 의상실 사업에서 더 큰 역할을 맡는,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다. 둘의 성격상 평탄하지 않은 미래가 되겠지만 역시 사랑-혹은 독버섯?-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