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의사 자질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조국 딸 조민)
“내 승마 선수 자질은 뭐가 부족해서 네 아빠는 나한테 그랬을까. 웃고 간다.”(최서원 딸 정유라)
딸들의 전쟁인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논란의 주인공들이 요즘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27)씨와 ‘조국 사태’ 논란의 중심인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조민(32)씨. 조씨는 지난달 6일 유튜브에 출연해 “이제 조국 딸이 아니라 조민으로 당당하게 숨지 않고 살고 싶다”고 선언한 후 본격적인 소셜미디어 활동을 시작했다. 얼굴 사진을 비롯해 바닷가 캠핑이나 캔들 공방, 미술관 다녀온 사진 등을 인스타그램에 적극적으로 올리고 있다. 그러자 정씨가 페이스북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 멘털이 부럽다. 나만 우리 엄마 형집행정지 연장 안 될까 봐 복날의 개 떨듯이 떨면서 사나 봐. 나도 엄마 감옥 가도 아무렇지 않게 스튜디오 사진 찍고 공방 다니는 멘탈로 인생 살고 싶다.”
◇조민 저격수로 나선 정유라
소셜미디어를 먼저 시작한 건 정씨다. 지난해 4월 27일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그는 “메달은 날로 딴 게 아니고, 삼성 말 빌려 탄 게 아니라 개인 마필”이라며 “지금 이 순간부터 그렇게 댓글 적는 분들 싹 다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법적처리하겠다”고 썼다. 이틀 뒤 “(각종 악성 댓글에 지쳐) 더는 게시물을 안 올리겠다”고 했지만, 5월부터 본격적으로 화력을 내뿜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악플엔 정면 대응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조국 전 장관, 안민석·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저격하는 글을 자주 올렸다. 지난해 1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검찰을 비판하며 쓴 “유검무죄 무검유죄” 글을 공유한 뒤 “아니죠, 지난 5년간 좌파무죄 우파유죄였잖아요”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2일 현재 정씨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4810명.
반면 조씨는 올해 1월 14일 인스타그램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지난달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SNS도 하고 모두가 하는 평범한 일들을 하겠다”고 말한 이후 팔로어가 급증해 2일 현재 12만3000여 명이다. 이 방송은 아버지 조 전 장관이 조씨와 남동생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당일 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이 아내 정경심 교수와 공모해 조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를 위조한 혐의 등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조씨는 뉘우침 하나 없이 “입시에 필요한 항목들에서 제 점수는 충분했다”며 “의사 자질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씨가 즉각 저격수로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 “내 승마 선수로서의 자질은 뭐가 그리 부족했길래 너네 아빠는 나한테 그랬을까”라며 “니 욕이 많겠냐, 내 욕이 많겠냐. 니가 억울할까, 내가 억울할까”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불공정 아이콘들이 “나만 억울”?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정권 실력자의 자녀였고, 입시비리의 수혜자였다. 들통 나 학위를 박탈당했고, 어머니는 구속 중이다. 승마선수였던 정씨는 이화여대 부정 입학 논란에 휩싸이며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이화여대 체육학과 입학이 취소됐고, 청담고 졸업도 취소돼 최종 중졸 학력이 됐다. 조국 전 장관 의혹 핵심에 있었던 조씨는 입시 비리 논란의 핵심이었던 7개 스펙이 대법원에서 모두 허위로 인정됐다.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입학이 취소됐고,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도 조씨 입학을 취소했다. 조씨는 이 처분에 불복해 고려대와 부산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씨가 얼굴을 드러내며 소셜미디어 활동에 나선 데 대해 심리학자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벼랑 끝 상태에서 자기 나름대로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탐색 중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씨의 거친 저격에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적 발언 대신 평범한 일상 사진만 올리고 있지만, 지난달 15일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조씨는 “메시지를 정말 많이 보내주셔서 확인이 느려지고 있다”며 “일일이 답장 보내지 못해도 시간 내서 틈틈이 읽고 힘을 얻고 있다. 응원·격려·조언 보내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고 썼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버지 조국 전 장관이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정치 활동을 했던 걸 보며 배운 것 같다. 반대쪽에서 뭐라 하든 상관없이 나를 지지하는 팬들만 갖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쉽게 말해 간을 보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정씨가 ‘조민 저격수’로 나선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 교수는 “둘 다 입시 비리의 수혜자이지만 정유라는 조민보다 타격이 훨씬 컸다. 처음부터 얼굴이 노출됐고, 조씨는 불기소됐지만 정씨는 감옥도 갔다 왔다. 메달은 자기 실력으로 땄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 같다”고 했다. 곽 교수는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에 본인 과오보다는 상대 탓을 하며 억울해하는 경향이 있다. 부부 싸움 할 때도 ‘너는 옛날에 어떻게 했냐’고 따지고, 정당들이 싸울 때도 ‘너네 당은 뭘 잘했냐”고 묻는데 심리학에선 이를 백파이어 효과(backfire effect)라고 한다”며 “우리가 보기엔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각자 자신이 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논란으로 한국 사회는 지금 기득권 된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이 과연 공정한 방식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느냐는 총체적 의문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다 ‘공정’을 말한다. 조씨는 유튜브에서 “검찰은 자기 가족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느냐”고 따져 물었고, 정씨는 “불공정은 댁이 아직 의사 하는 거고 내 메달은 위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학원생 김모씨는 “어찌 됐든 둘 다 멘털 하나는 대단하다. 진영 갈등을 격화시켜 한국 사회를 둘로 갈라지게 한 것도 국정농단과 조국 사태인데, 불공정의 아이콘 같은 두 사람이 남탓하며 ‘공정’을 입에 올리는 게 참 당황스럽다”고 했다. 두 사람 관련 기사에는 “둘 다 조용해라. 그래봤자 범죄자의 자녀들이다” “정신 못 차렸네. 둘 다 부모 후광으로 살았으면서 누가 더 더럽냐로 다투는 꼴이라니” 같은 댓글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