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의 뷔페 레스토랑 ‘에스테이트’의 음식들.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5개 레스토랑은 현지인들에게도 미식 명소로 인기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포르를 맛으로 느끼고 싶다면, 오차드 로드 중심에 자리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에서 하룻밤 어떨까. 1971년 지어진 호텔을 리노베이션, 작년 2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힐튼 호텔 중 가장 큰 규모(1080실)로 새로 문 연 곳이다. 세드릭 누불 호텔 총지배인은 “힐튼이 지닌 모든 것 중 최고를 모아 놓은 그 자체”라고 했다.

◇맛으로 느끼는 ‘아시아의 멜팅팟’

현지인들도 찾는 호텔 안 5개의 레스토랑에선 각국의 음식을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은 중식당 ‘시센 한텐’, 뷔페 ‘에스테이트’, 캘리포니아-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오스테리아 모짜’, 싱가포르 현지 음식을 내는 ‘채터박스’, 그리고 애프터눈 티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진저릴리’다.

호텔에서 유일하게 미쉐린 별(2개)을 받은 시센 한텐은 첸 켄타로 셰프의 중국 쓰촨 요리 전문점이다. 대표 메뉴는 ‘첸의 마파두부’.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魔羅)를 좋아한다면 꼭 먹어봐야 할 메뉴. 바닷가재에 칠리 소스를 얹어 낸 요리도 일품이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오스테리아 모차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미쉐린 별 하나를 받은 로스앤젤레스 본점의 낸시 실버튼 셰프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개 낸 분점이다. 홈메이드 파스타부터 그릴 요리, 신선한 모차렐라 치즈를 이용한 특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시그니처는 화덕 피자. 누불 총지배인은 “화덕 피자는 호텔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아이들과 와서 먹을 정도로 맛있다”고 추천했다.

채터박스는 싱가포르 현지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한국인이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메뉴는 치킨 라이스. 닭 육수로 익힌 밥에 부드럽게 찐 닭안심을 같이 낸다. 담백하고 감칠맛이 뛰어나서, 삼계탕 안에 들어간 찹쌀밥이나 백숙을 먹고 마무리로 끓여 먹는 닭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하는 메뉴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의 '채터박스' 음식들. 왼쪽은 치킨 라이스, 오른쪽은 로작이다. /김은경 기자

로작(Rojak)은 그보다 이국적이고 새로운 맛이다. 그린 망고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과 채소, 튀긴 빵 위에 매콤달콤한 소스와 으깬 땅콩을 뿌려낸 샐러드. 로작은 말레이어로 ‘다양하게 잘 섞인’이란 뜻. 저마다 강한 풍미를 가진 이질적인 재료들이 어우러지는 맛으로,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인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한 그릇에 담아낸 음식이다.

힐튼 오차드 싱가포르의 조엘 마티아스 레스토랑 부문 지배인은 “할아버지는 포르투갈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말레이인 할머니를 만나 아버지를 낳았다”며 “내가 바로 싱가포리안, 로작”이라고 했다. 이 음식에 담긴 의미가 아니더라도, 상큼하면서 고소한 감칠맛이 오묘하게 섞인 맛에 자꾸 손이 갔다. 싱가포르에선 김치처럼 먹는다고 하니 다른 메뉴를 시키면서 추가해서 시켜도 좋다.

바&라운지 진저 릴리에서는 영국의 극작가 서머셋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했던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을 맛볼 수 있다. 진을 베이스로 파인애플 주스와 체리 브랜디 등을 섞어, 노을을 풀어놓은 듯한 오묘한 색을 낸다. 싱가포르 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국민 칵테일’로 “싱가포르에 500명의 믹솔로지스트가 있다면 500개의 슬링 레시피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라탄·아치형 복도… 헤리티지 인테리어

호텔 내부 인테리어에서 17세기 유럽 식민 시대에 유행했던 콜로니얼 양식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특히 조식과 저녁 뷔페를 제공하는 에스테이트 레스토랑은 여러 개의 방이 복도를 따라 연결된 듯하게 꾸몄고, 복도에는 아치형 라탄 장식을 더했다. 식당 벽 곳곳에는 넛멕, 후추, 과일나무 등 오차드 로드에서 경작했던 작물 그림이 걸려 있다.

객실에는 양문이 달린 옷장 대신 텔레비전 뒤로 개방된 형태의 옷장이 마련돼 있는데, 집에서 챙겨 온 옷도 마치 백화점 행거에서 꺼내 입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패션과 쇼핑의 중심지로 변모한 오늘날의 오차드 로드의 감각을 구현한 인테리어다.

객실마다 걸려있는 한 폭의 수묵화는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누불 총지배인은 “호텔이 위치하고 있는 오차드 로드의 역사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했다”며 “과거 이 거리의 풍경과 농장을 오마주하는 다양하고 미묘한 감성과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 한복판에 위치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지난해 2월 새로 문을 열었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지속가능한 여행 떠나볼까

힐튼이 50년 된 건물을 재단장하면서 가장 초점을 둔 것은 지속 가능성. 1년에 쓰는 4만개의 플라스틱 카드키를 배스우드로 만든 나무키로 바꿨고 객실에 제공되는 생수는 플라스틱병에서 유리병으로 바꿨다. 연간 물병으로 쓰이는 플라스틱만 3t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호텔에서 사용되는 음식·음료 포장지는 ‘지속 가능한 산림 인증(FSC)’를 받았다. 객실 내 에어컨과 조명은 움직임 센서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모짜는 자체 정원에서 로즈마리와 바질 등 허브를 직접 재배해서 쓴다.

세드릭 누불 총지배인은 “싱가포르 최초로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대용량 샴푸·바디워시를 배치하고, 호텔 자체 정수 시스템을 갖춰 매일 유리병에 깨끗한 물을 담아내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고 말했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의 나무 카드키. 연간 4만 개의 플라스틱 카드를 대체한다. /김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