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떡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마도 쫀득쫀득한 식감 때문일 것이다. 입맛은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 그런데 맙소사, 오래 살고 볼 일이다. K컬처 바람을 타고 떡볶이부터 인절미까지 떡(ttoek)이 세계로 공중 부양했다. 주식시장에 빗대면 속칭 ‘떡상(가치 급등)’이다.
이달 초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다녀온 연출가가 한국 분식집이 생겼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대도시도 아니고 인구 50만의 소도시에서 떡볶이를 먹게 될 줄이야. ‘Korean Munchies’라는 이 분식집 메뉴판을 보니 닭강정, 김밥, 소떡소떡, 핫도그도 팔리고 있었다. 비언어극 ‘셰프’ ‘플라잉’을 만든 최철기는 “에든버러에 처음 간 2005년에 현지 아이들이 아시아에서 온 우리 공연팀을 신기한 듯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며 “그 도시에서 한국 분식집이 성업 중이라니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손관승 칼럼니스트는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식당에 앉아 있다가 “오빠!”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한국 드라마를 열성적으로 본다는 베트남 출신 여종업원이 처음 보는 한국 손님을 “오빠”라고 부르더라는 얘기. 그는 “단군 이래 해외로 가장 많이 수출된 한국어가 ‘오빠’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며 “베를린에서는 인절미가 수북이 올라간 한국 팥빙수를 먹을 수 있는데 고객의 상당수는 외국인”이라고 전했다.
K컬처는 그만큼 트렌디하다. 세계 최고 패션 하우스들은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와 축구 선수 손흥민을 비롯해 한국 스타들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쓴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식 레퍼토리는 불고기나 비빔밥 따위를 넘어섰다. 미국 NBC방송은 ‘떡볶이의 점령’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인들이 한국 길거리 음식을 탐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떡볶이는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서울 어느 시장에서 먹는 모습이 포착돼 핫 아이템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고려인 강제 이주 후 중앙아시아를 떠돌다 1930년대 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정착한 고려극장은 ‘춘향전’ ‘심청전’ 같은 공연으로 뿌리를 일깨우며 모국어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고려인 2~3세 대부분은 한글에 문맹(文盲)이다. 그래도 여전히 김치는 먹는다. 음식은 이렇듯 언어보다 힘이 세고 오래간다. 입맛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에든버러의 떡볶이집은 그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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